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1️⃣ 한줄 평

웹소설과 히어로가 만날 때: 한국의 SF씬, 살아 있네!

 

♓ Inuit Points ★★★☆☆

본디 우리 것은 아니지만, 장르를 다시 변주해서 효자 수출 상품을 만든 게 있죠. 전 HBAF 아몬드와 좀비물이 떠오릅니다. 이 책 보니 히어로물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덟 명의 작가가 우리 생활속 히어로 물을 SF 장르적 포맷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각기도 독특하고 재미나지만, 모아두니 새로운 의미를 느낍니다. '지겨운 마블보단 우리동네 히어로가 더 재미난 장르가 될 수도 있겠구나'. 별 셋 주었습니다.

 

❤️  To whom it matters

• 웹소설 좋아하지만, 살짝 전통적 이야기를 읽고 싶은 분
• 휴가길, 연휴에 심심풀이 땅콩 같은 이야기가 필요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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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집은 2015년 앤솔로지 '이웃집 슈퍼 히어로'의 후속입니다.
• 김보영 작가 중심으로, 이수현, 듀나, dcdc까지 네 명은 전작에 이어 참여했습니다.
• 그래서, 네 작가의 이야기는 전작의 세계관에 기반한 시퀄 또는 프리퀄이란 점이 재미납니다.
• 전 김보영 작가를 읽고 관심이 가서 그의 다른 작품을 살펴보다 제목에 꽂혔습니다.

 

장강명 / 듀나 / 이수현 / 김보영 / 곽재식 / 임태운 / 구병모 / 홍지운

2018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이야기 별 간단한 리뷰입니다. 점수는 제 개인적 애착입니다.

 

🦸‍♀️🦸‍♀️🦸‍♀️🦸‍♀️🦸‍♀️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임태운)

제목부터 느낌이 딱 오면서 웃음이 나죠. 히어로가 너무 많은 상황에다 네비게이션 같은 안내 말투라니.

실제로 작품은, 어떤 계기를 통해 상당히 많은 사람이 크고 작은 초능력을 갖게 된 서울을 그립니다. 따라서 히어로콜이라는 앱도 있고, 히어로가 문제를 해결하면 사람들은 별점으로 평가를 합니다. 히어로들은 세레모니 같은 자기 브랜딩, 팬서비스, 깔끔한 일처리 등을 늘 신경써야 하죠. 결국 히어로의 긱 이코노미 세상입니다.  영등포에서 히어로가 곤욕을 치르면 평시의 구역 존중을 넘어 연대차원에서 양화대교를 넘어 도와주러 오기도 하고요. 이야기의 결말과 메시지보다도 세계관 자체가 정말 재미나고 인상 깊었습니다.

 

🦸‍♀️🦸‍♀️🦸‍♀️🦸‍♀️🦸‍♀️ 주폭천사 괄라전 (dcdc)

이건 진짜 실실 웃으면서 봤습니다. 어떤 계기로 술을 마시면 초능력이 생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모임은 전아련이고 (전국아저씨연합)이고 개저씨들입니다. 초능력이란 장치를 빼면 그냥 술먹고 꽐라되는 사람들 이야기인데, 능청스럽게 히어로 물의 서술을 취합니다. 액션도 열심이고 나름 반전도 충실하며 전개가 쫀쫀해서 재미 있었습니다. 경기히어로연대라는 전작 '월간 영웅홍양전'의 세계관을 이었습니다.

 

🦸‍♀️🦸‍♀️🦸‍♀️🦸‍♀️🦸‍♀️로그스 갤러리, 종로 (김보영)

역시 김보영이다 싶습니다. 여기도 초인이 여럿인 세계관인데, 초인에게 위협을 느낀 정부가 가장 대표적 초인을 여론전을 통해 악인을 만든 상황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결국 위기를 타파하려 초인끼리 싸우는게 후반부의 진행방향인데, 과학이 잘 받쳐줘 재미납니다. 예를들어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히어로가 다른 능력을 선보이는데 사실은 이 히어로의 진짜 속성은 중력이었던 겁니다. 중력이라 빛을 다뤘고 사람들은 빛속성 히어로로만 알았던거죠. 약간의 과학적 장치로 SF의 장르성을 유지하면서 현세에 잘 엮었습니다. 서울쯤에, 고등학교에서 보육되는 수많은 히어로들 같은 익숙한 생경함이죠.  전작 중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람' 번개의 후속 이야기입니다.

 

🦸‍♀️🦸‍♀️🦸‍♀️🦸‍♀️영웅도전 (곽재식)

이건 SF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먼 옛날 청해진 시대의 초인 이야기입니다. '칼 들지 않는 사람은 상과 벌밖에 줄게 없잖아. 근데 상은 아까우니 벌만 줘야지'라는 조정 관리의 폭압에 맞서는 민중 이야기를 고전의 텍스트로 풀어냅니다. 매우 천연덕스러운 이야기 솜씨입니다.

 

🦸‍♀️🦸‍♀️🦸‍♀️🦸‍♀️ 저격수와 감적수 관계 (이수현)

이 역시 전작 '선과 선'의 후속입니다. 순간이동 능력자가 아주 짧은 미래를 보는 능력자와 짝을 이뤄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근데 여기도 히어로는 많아 대단한 세상 구하기가 아니라, 소방대의 일원으로 구조합니다. 두 사람 모두 초보고 수많은 연습 끝에 첫 실전에 투입되는 순간을 상세히 소묘하는, 일종의 성장물입니다. 소재와 발상이 신선해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훌륭하겠다 싶습니다.

 

🦸‍♀️🦸‍♀️🦸‍♀️🦸‍♀️캘리번 (듀나)

이건 '아퀼라의 그림자'란 전작의 프리퀄입니다. 어떤 이세계에 생긴 초기를 말합니다. 대구가 배경인데, 이것도 시네마틱한 상상력입니다. 중반부터 짐작가는 반전이 있어 전개를 따라가는 재미를 더합니다.

 

알골 (장강명)과 웨이큰(구병모)은 제겐 별로였습니다. 책의 다른 이야기들과는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느낌입니다.

 

책을 돌아보며 생각했습니다.

초인이 극소수가 아니라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지능이나 운동능력처럼 초능력도 그냥 하나의 특성치라면, 인간 사회와 어울려 사는게 중요할터입니다. 그 능력을 선하게 쓰면 추앙받고 악하게 쓰면 빌런이 됩니다. 와중에 독보적 존재도 아니니 자기 홍보와 인티그리티(integrity)도 신경써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다시 속세의 진리로 회귀합니다.

각자가 가진 재능이 초능력처럼 마법적이지 않을 뿐, 우리는 모두 어떤 의미의 초인의 속성을 가진 거일수도 있구나. 그렇다면, 히어로를 자임하고 그길로 나갈지 아닐지는 스스로의 의지구나. 와중에 선의를 포기하면 빌런되는건 금방이구나. 심지어 관종 자체도 빌런일수 있구나.

 

책을 읽었는데 넷플릭스를 본 듯, 즐거운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