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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 (辨經)

Inuit 2007. 3. 6. 21:55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닭 잡는 칼로 소를 잡겠다고 나선다면, 소는 커녕 애꿎은 사람만 잡을 뿐이다. -렁청진

어쩌면 이 말 한마디가 '변경'을 대변한다 하겠습니다.

대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뜻을 세워야 하고, 그에 적합한 사람을 모아야 합니다. 말은 쉽지만 행동은 매우 어렵습니다. 당장 면접을 통해 사람 한명이라도 뽑아본 분은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사람이 이 일에 적합한가 아닌가. 좀 더 나아가 향후 5년 후, 10년후에 우리 조직에 핵심 인재가 될 것인가. 궁극적으로 나는 이 사람과 비전을 함께 실현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런 문제들을 매 순간 결정해야 하고, 잘못된 결정은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하고 조직의 효율을 저하하거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방해요소가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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렁청진 (冷成金)

이름도 이상한 '변경(辨經)'.
굳이 영어로 옮겨보면 'Book of discernment' 정도 되려나요.

'변경'은 위나라 유소가 쓴 '인물지'를 바탕으로 다시 엮은 책이라고 합니다. '인물지'는 識人寶鑑이라는 별칭이 있는 책입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보물책이라니, 귀가 솔깃 하지요? 실제로 '인물지'는 성공한 사람이 혼자만 베갯머리에 두고 읽는 秘書라는 소리도 있다 하네요.

'변경'은 넓디 넓은 중국의, 기나 긴 역사상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 인물들에 대한 평을 기록한 책입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균질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부가적으로 중국인의 실용적이며 다중적인 성향도 엿볼 수 있습니다.

워낙 많은 인물이 나오다보니, 제갈량, 관우, 유비, 위연, 마속, 사마의 등 삼국지 인물도 제법 있는데, 소설과는 다른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예컨대, 관우는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친 사람이고, 제갈량은 위임을 못하고 혼자서 일을 처리하다 대업을 이루지 못했다는 평입니다.

전에
신영복 선생의 강의 연작 포스팅에서도 밝혔듯, 가장 발랄하고 활기차게 백가 사상이 만발했던 시대가 바로 춘추전국 시대입니다. '변경' 역시 춘추전국 시대의 다양한 샘플이 가장 빛나는군요.

'변경'의 독특한 점은, 제왕과 재상, 장군, 문신 등 무수한 범주의 인물을 다루기 때문에 읽는 이의 처한 상황에 따라 배울점이 각기 다르리라는 점입니다. 저만 하더라도 5년 후에 이 책을 다시 보면 전혀 새롭게 읽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점점 제왕의 운신쪽에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웅은 시대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각 인물들의 소개에 따라 수많은 이야기가 교차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변경'은 옛날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접하는 이야기 책으로서의 의미도 있습니다. 제 경우 중국 역사에 별 관심이 없어 고사성어에 나온 이야기 이외에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습니다. '변경'은 풍부한 중국의 사례를 담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일례로, 대대로 중국의 강남에서는 시인이 나오고 북방에서는 황제가 나온 사실은 문화적 지리적 배경과 함께 들으면 더욱 그럴싸 하지요. (저자는 인자요산 지자요수와 맥을 이어 설명 합니다.)

총평을 하자면, '변경'은 매우 재미난 이야기 책입니다.
수많은 사례와 인물 샘플이 있어 사람을 보는 안목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자백가 사상 위의 중국이라는 철학적, 지리적 배경하에서 일어났던 일임을 감안할 필요는 있습니다. 특정 인물이 성공했던 전개방식은 특정 시대 배경 위에서 다른 인물들의 reaction schema가 존재하는 경우에 의미 있으니 말이지요.
따라서 철학은 수용하되 방법론은 교조적으로 받아 내리면 안될 것입니다. 마치
19년을 식객노릇하다 왕업을 이룬 진나라 문공을 따르려면 그만큼의 글로벌한 시각이 있어야 함이지, 19년어치의 인내심만으로는 부족한 것처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