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닭 잡는 칼로 소를 잡겠다고 나선다면, 소는 커녕 애꿎은 사람만 잡을 뿐이다. -렁청진

어쩌면 이 말 한마디가 '변경'을 대변한다 하겠습니다.

대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뜻을 세워야 하고, 그에 적합한 사람을 모아야 합니다. 말은 쉽지만 행동은 매우 어렵습니다. 당장 면접을 통해 사람 한명이라도 뽑아본 분은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사람이 이 일에 적합한가 아닌가. 좀 더 나아가 향후 5년 후, 10년후에 우리 조직에 핵심 인재가 될 것인가. 궁극적으로 나는 이 사람과 비전을 함께 실현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런 문제들을 매 순간 결정해야 하고, 잘못된 결정은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하고 조직의 효율을 저하하거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방해요소가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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렁청진 (冷成金)

이름도 이상한 '변경(辨經)'.
굳이 영어로 옮겨보면 'Book of discernment' 정도 되려나요.

'변경'은 위나라 유소가 쓴 '인물지'를 바탕으로 다시 엮은 책이라고 합니다. '인물지'는 識人寶鑑이라는 별칭이 있는 책입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보물책이라니, 귀가 솔깃 하지요? 실제로 '인물지'는 성공한 사람이 혼자만 베갯머리에 두고 읽는 秘書라는 소리도 있다 하네요.

'변경'은 넓디 넓은 중국의, 기나 긴 역사상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 인물들에 대한 평을 기록한 책입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균질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부가적으로 중국인의 실용적이며 다중적인 성향도 엿볼 수 있습니다.

워낙 많은 인물이 나오다보니, 제갈량, 관우, 유비, 위연, 마속, 사마의 등 삼국지 인물도 제법 있는데, 소설과는 다른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예컨대, 관우는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친 사람이고, 제갈량은 위임을 못하고 혼자서 일을 처리하다 대업을 이루지 못했다는 평입니다.

전에
신영복 선생의 강의 연작 포스팅에서도 밝혔듯, 가장 발랄하고 활기차게 백가 사상이 만발했던 시대가 바로 춘추전국 시대입니다. '변경' 역시 춘추전국 시대의 다양한 샘플이 가장 빛나는군요.

'변경'의 독특한 점은, 제왕과 재상, 장군, 문신 등 무수한 범주의 인물을 다루기 때문에 읽는 이의 처한 상황에 따라 배울점이 각기 다르리라는 점입니다. 저만 하더라도 5년 후에 이 책을 다시 보면 전혀 새롭게 읽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점점 제왕의 운신쪽에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웅은 시대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각 인물들의 소개에 따라 수많은 이야기가 교차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변경'은 옛날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접하는 이야기 책으로서의 의미도 있습니다. 제 경우 중국 역사에 별 관심이 없어 고사성어에 나온 이야기 이외에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습니다. '변경'은 풍부한 중국의 사례를 담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일례로, 대대로 중국의 강남에서는 시인이 나오고 북방에서는 황제가 나온 사실은 문화적 지리적 배경과 함께 들으면 더욱 그럴싸 하지요. (저자는 인자요산 지자요수와 맥을 이어 설명 합니다.)

총평을 하자면, '변경'은 매우 재미난 이야기 책입니다.
수많은 사례와 인물 샘플이 있어 사람을 보는 안목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자백가 사상 위의 중국이라는 철학적, 지리적 배경하에서 일어났던 일임을 감안할 필요는 있습니다. 특정 인물이 성공했던 전개방식은 특정 시대 배경 위에서 다른 인물들의 reaction schema가 존재하는 경우에 의미 있으니 말이지요.
따라서 철학은 수용하되 방법론은 교조적으로 받아 내리면 안될 것입니다. 마치
19년을 식객노릇하다 왕업을 이룬 진나라 문공을 따르려면 그만큼의 글로벌한 시각이 있어야 함이지, 19년어치의 인내심만으로는 부족한 것처럼 말이지요.
  1. BlogIcon Hee 2007.03.06 23:07

    이 책 어딘가에서 본 거 같은데. 생소한 거라 그냥 지나가곤 했습니다만..
    '매우 재미난 이야기 책'이라 하시니.. 제대로 집어들어서 봐야겠습니다. :)

    • BlogIcon inuit 2007.03.07 22:11

      이 책도 특별한 설명 없으면 손이 잘 안가지요.
      특히 두께의 압박은.. ^^;
      (미리 말씀 드리지만, 사람따라 재미없을지도 몰라요. -ㅇ-)

  2. BlogIcon BrightListen 2007.03.06 23:50

    편집된 기록을 다시 엮은거라면,
    과거 중국의 인물를 바탕으로한 몇몇의 책들처럼 미화적이겠지요.ㅎ
    포스트 읽는 내내 '나는..' 이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아! 블로그 방문해 주신것 같더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영화 포스트를 비롯해 모든 포스트는 스크랩 가능하지만, 다 긁어 갈순 없습니다.
    북마크식의 링크만 긁어가는 거지요.. 일종에 낚시라고 할까요.. 핫;

    • BlogIcon inuit 2007.03.07 22:14

      꼭 미화적이지는 않아요.
      오히려 비판적이고, 어설프지만 분석적입니다.

  3. BlogIcon 쭈야 2007.03.07 11:13

    중국의 이야기를 다룬책은 왠지 저에게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삼국지를 볼때도 보다가 머리에 잘 흡수가 되지 않는 느낌이 너무 심각하게 들어서 포기했었다는;;;
    유일하게 재밌게 읽은 중국 책이라면 손자병법 뿐입니다.
    음...
    그만큼 중국에대한 배경지식이 없어 읽기에 좀 어렵지 않을까 하고 덜컥 겁부터 나네요;;;

    • BlogIcon inuit 2007.03.07 22:15

      삼국지가 재미없으셨다면, 이 책은 비추.. -_-;;

      배경지식은 별로 필요 없을듯해요. 알면 더 재미있지만. ^^

  4. BlogIcon 엘윙 2007.03.07 12:52

    삼국지를 무지좋아하는 우리 꾸꾸에게도 권해봐야겠군요. 꾸꾸도 종종 삼국지의 인물에 대해 총평을 하곤 합니다. 크크. 춘추전국시대라는 독특한 시대적 배경때문에 다양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요즘 이쪽은 너무 평화로워서 저는 재야에서 은둔하고 있습니다. 후후후.

    • BlogIcon 이승환 2007.03.07 16:31

      에륑히메께서는 모든 것을 꾸꾸님과 연관짓는군요, 의외로 순정파인 것 같습니다, 크크큭... 곧 천하를 뒤흔드는 대선이 다가오는데 재야를 벗어나길 권합니다, 전 언제나 재야를 벗어나길 원하는데 아무도 픽업을 안 하는군요... -_-

    • BlogIcon inuit 2007.03.07 22:18

      맞아요. 의외의 모습이지요.
      항상 꾸꾸~ 꾸꾸~ 를 입에 달고 사는 엘윙히메.
      비둘기도 아니고.. ^^;

  5. BlogIcon 미래도둑 2007.03.07 14:31

    유소의 인물지는 사다놓고 아직 읽지 못했는데, 변경과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군요. 진짜, 좋은 정보 주셔서 감솨!!

    • BlogIcon inuit 2007.03.07 22:19

      비슷한 내용일텐데 있는거 보세요. 하하..

  6. BlogIcon SuJae 2007.03.07 21:59

    중국과 관련 된 책(무협지 말구요!!)을 읽다보면 인물이 너무 많아 몇번이고 뒤로 되돌아가 읽어보게 됩니다.
    ... 등장인물 좀 줄면 좋겠는데...
    읽다만 책들은 책장에 가득한데, 계속 이렇게 좋은책을 권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_=;

    • BlogIcon inuit 2007.03.07 22:20

      양산박의 108 호걸 정도는 기본이잖습니까. -ㅇ-

      어째 민폐를 끼친듯한.. ^^;;

  7. BlogIcon 광이랑 2007.03.08 19:24

    최근 친척분께서 쓰신 시에 대한 서평을 읽고 있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제 구미에 딱 맞는 책을 소개해 주셨군요. 중국, 인물, 역사 제가 좋아하는 부분을 정확히 다 모아놨다고나 할까요. 소개 감사합니다. 꼭 읽어보겠습니다.

    • BlogIcon inuit 2007.03.10 12:11

      오호 광이랑님은 이쪽이 딱 맞으시는군요. 광이랑님의 리뷰가 기대됩니다. 혹시 글쓰시면 잊지말고 트랙백해주세요. ^^

  8. BlogIcon Rationale 2007.03.08 21:15

    많이 트래디셔널하지만 사기 열전편을 탐독하며 신기한 기분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시야가 좁았던 당시의 저에게 열전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인간형 유형화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의 사람들과 지금의 사람들은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사람을 보는 안목이라는 면에서는 꽤나 많은 도움을 받았던게 사실입니다. 지금 보면 또 다른 기분이더라구요. 새록새록 읽어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비판적이고 분석적이라면 열전과는 다른 느낌일 듯 합니다. 읽어보아야 겠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BlogIcon inuit 2007.03.10 12:14

      네, 열전이나 인물전은 후세나 문화에 따라 trasferrable한 부분과 isolating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걸 잘 가리는 사람이 잘 배우는 사람 아닐까 생각해요. ^^

      분석 부분은 분명히 '어설프지만'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음을 확인해주세요. 하하하

  9. BlogIcon 프카프카 2007.03.09 11:32

    반년동안 읽어서..-_-;;

    두께 압박이 장난 아니죠..;;;
    베고자기는 좋습니다....
    읽으면 자꾸 졸려서 너무나 진도가 안나갔더랩니다 ㅋㅋㅋㅋ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강추 강춥니다~~

    • BlogIcon inuit 2007.03.10 12:15

      크하하하.. 두께의 압박을 공감하는 분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전 이책을 점심과 저녁식사 이후 짜투리시간에 읽었는데 거의 3개월 걸린듯 합니다. ㅠ.ㅜ

  10. BlogIcon grace 2007.03.09 17:49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추위는 잘 이겨내셨는지요. 게으름과 일상의 업무가 극치에 달아... ㅠ_ㅠ
    밀린 책을 좀 봐야겠습니다. ^^
    제 남자친구는 이제 초한지의 끝을 내달리고 있다네요.
    다 읽으면 삼국지 다시 읽는다는데 이 책을 소개하면 좋아할 것 같아요. : )

    • BlogIcon inuit 2007.03.10 12:19

      초한지 삼국지 좋아하는 분은 좋아할 확률이 있겠네요.
      하지만, 너무 young 한 분이라면 초한지와 삼국지의 달콤한 세팅을 깨는 이 책이 달갑지 않을지도 몰라요. ^^
      회사 생활 쓴 맛 좀 본사람이면 재미있게 읽겠지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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