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했고, 경영을 업으로 해 왔지만 저는 이과 출신입니다. 과학하는 태도가 정신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반과학은 눈살이 찌푸려지고, 비과학은 재미로 봅니다. 비과학 존재 의미를 인정하는건 종교이고, 쓰임새와 효과를 수긍하는 측면입니다.

좀더 엄밀히 들어가면 현대 지식인의 점성술인 MBTI 비과학입니다. 혈액형 점을 재미로 보는건 그럴 있는데 진짜로 믿는 사람을 보면 당황스럽듯, ENFJ같은 MBTI 남에게 알려주면 자기 DNA 코드를 공개하는 듯한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갑갑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주역에 관한 내용입니다.

부제: 흐름에 맞게 나를 지켜내는

수천년 유구하게 이어지는 인습이라면 무언가 이유는 있겠지하고 궁금했던게 한가지라면, 제목이 뭔가 합리적으로 느껴진게 둘째 이유입니다. 한자 해석만 꾸역꾸역 늘어놓는 시간 낭비 글은 아니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몇장 넘기다 감탄한건 뜻밖에도 아름다운 주역의 2진법 체계였습니다. 비과학이라고 생각한 주역에 디지털이 있었고, 이진수를 쌓아 올리는 체계는 매우 과학적이었습니다.

 

태극이 분화해 음양이 갈라지면 1비트가 되고 ()라고 합니다. 효를 두개 쌓으면 가지 상태(state) 표현하고 4상이라고 합니다. 효를 세개 쌓으면 3비트가 되어 여덟가지 상태를 표현하고 소성괘라 합니다. 소성괘의 여덟 상태는 8괘라 합니다. 소성괘 두개가 모이면 6비트, 64괘를 담는 대성괘가 됩니다.

 

이거야 요소들이고, 과연 점은 어찌 보는지가 저는 가장 관심이 갔지요. 책에 의하면 6 효를 뽑아 두개의 소성괘를 만들고  소성괘 간의 관계로 길흉, 화복을 읽어냅니다.

 

이쯤에서 생기는 질문은, 어떻게 수억명의 수만가지 잡사를 64 괘로 짚어낼지인데요. 제 보기엔 기본적으로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입니다. 일반적 진술에서도 자기의 상황을 기대어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심리효과죠. 용하다는 모든 점술의 기본입니다. 다만, 주역이 주역다워지는 건 8괘에 상징을 심어둔 부분입니다.

건태리진 손감간곤에 각각 하늘, 연못,, 천둥 바람,,, 땅을 짝지어 두었기에, -감의 괘가 나오면 '하늘이 물을 만난다' 뼈대가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미래가 궁금해 점보는 이 구체적 상황이 들어가면 완성입니다. 나머지 부분은 인간의 강렬한 스토리본능이 이야기를 지어 마무리 합니다.
 

가진 카드가 네개로 너무 적어 설명이 단조롭고 현실에 대응시키면 바로 기각되는 혈액형입니다. 이보다 조금 버티는 16개 갈래 MBTI지만 역시 미신같은 설득력이죠. 64괘의 주역은 메뉴가 , 자연에서 따온 상징으로 넓고 유연한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아마 타로 정도가  풍부한 옵션이 있을 같네요.

 

다시 과학적인 눈으로 보겠습니다.

만일 64괘가 정말 운을 짚어낸다고 가정하면 필연적으로 '재현가능'해야 합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상황에 대해 30 간격으로 상황을 묻을때 답이 달라진다면 그게 이상하죠. 하지만 우리는 수학적으로 같은 괘가 나올 확률은 1/64*1/64 = 0.024%라는걸 배워 알고 있습니다. 주역은 재현가능성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만 확인하면 됩니다.  

 

책에서 강조하는 세가지 마음가짐에 답이 있었습니다. 세가지 선결조건은

비움= 욕망을 버림
단순화= 질문을 간결하고 구체적으로 정해둠
집중= 몰입

결국 세가지 마음가짐에 따라 욕망을 버리고 (=점괘가 마음에 든다고 다시 보지 않기), 구체적으로 상황을 상정하고 몰입해서 해석의 여지를 미리 풍부히 다져두는데 요체가 있군요. 책 읽다 무릎을 구절은 완색입니다. 완색이란 결과를 갖고 놀며 이리저리 생각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정확히 스토리 메이킹이고 뇌가 이야기를 완성할 때까지 창의성을 불어넣는 단계입니다.

 

이쯤해서 주역이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어렴풋이 알았으니 책에 나온대로 점을 쳐봤습니다. 저와 식구들의 구체적 상황 셋을 놓고 점을 봤는데 신통하게 맞았습니다.

그래요. 맞았어요.

예컨대 우리 딸의 '1 시험'이란 상황을 놓고 점을 치는데 '소녀가 웃는다'라고 나옵니다. 답도 기분 좋지만 묘사가 소름끼치죠. 하지만 몇차례 더 진행해서 나온 점괘와 상황을 무작위로 섞어서 봐도 기막히게 맞습니다. 예컨대 점에 소녀가 웃어도 식구들이 기뻐하나보다 생각을 하겠죠.

어쨌든, 바넘 효과니 뭐니 해도 실제로 스토리로 포장된 점괘는 신기하고 재미납니다. 그래서 점이 의미가 있는거죠. 신중을 기하고, 좌절하지 않고, 사람을 잘 대하고.. 우리가 아는 도덕률을 뇌 속 창고에서 꺼내어 실생활에 장착하는 과정입니다. 의미도 좋지만 믿고 잘 따르면 결과도 좋습니다. 미래 가치가 있는거죠.

 

제가 책 조금 읽어보고 주역의 원리를 아는듯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whackpack이라는 비즈니스 점성술 있어서 구조와 효과를 이미 알고 있었기때문입니다.

결국 깨달았습니다.

주역은 거울이구나.

점치는 사람은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수정구슬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신의 모습을 반사해서 비춰주는 거울. 덕에 상황을 다시 생각하고 이해하고 포용하고 결과와 화해하는 과정 속에서 주역의 힘이 생겨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역점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양 고금의 사람들에게 많은 위안과 , 그리고 경거망동을 저어하는 경계가 되었고 실제 삶에 도움이 되었을겁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이어져왔을테고요.

 

Inuit Points ★★★

그런 관점에서 주역이 '신의 언어'라든지 선택의 앞에 고독한 인간을 위한 학문이란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자나 신성은 내 마음의 거울상이니까요.

비과학적 신성와 신비함을 털어버리고, 선택과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나약한 인간으로서 마음을 보고 의지를 다지는 도구라면 주역이든 타로든 혈액형이든 전혀 나쁜 건 아닙니다. 그걸로 사람을 심약하게 만들고 조작하고 약탈하지만 않는다면요. 난중일기에 수없이 나오는 이순신 장군 점치던 심경도 그러할겁니다.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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