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자 연결망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이라고 있습니다.

인간이든 아니든 세상 모든 존재는 상호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이론입니다. 말이 어렵지요. "사무라이는 검객과 칼의 제휴로 이뤄진다"는 제가 예전에 읽었던 ANT 사례입니다. 당시,  기이하지만 흥미로운 발상이구나 정도로 넘어 갔었습니다.

 

누군가의 호평 아방가르드한 제목에 끌려 읽은 , 실로 경이롭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사고의 전복을 시도합니다.

 

 

책은 지식의 최전방에 서 있는 25 학자의 주요 견해를, 우리나라에서 동일 주제를 연구하는 25 학자가 한명씩 맡아 소개하는 형식으로 적었습니다. 관점이 다양하되 들쭉날쭉하고, 극단을 향하되 보폭도 제각각입니다. 하지만 점묘로그림이 완성되듯, 각각의 점을 보다 보면 내 관점의 변화가 생기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앞서 말한 ANT의 경우, 총기살인은 인간과 총이 공동으로 구성한 행위라는게 행위자 연결망 이론의 관점입니다. 아무 생각과 의지가 없는 총, 그리고 사무라이의 칼은 사물인데 어찌 인간과 연합하고 제휴하겠습니까. 하지만 책의 전제사항 한가지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내려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을 관통하는 집요한 시도는, 인간 비인간, 사회 자연의 관점을 버려보자는 겁니다.

 

인간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바라보면, 과속방지턱은 경찰 대신 운전자의 행위를 통제하는 결과를 가집니다. 과속방지턱의 의지나 사고가 없더라도, 사물들의 관계 속에서 어떤 효과를 내니 그 존재는 인정해야겠지요.

 

그러면 의식이나 의지가 결여된 비인간의 동작을 어찌 '행위'라고 부를 있을까요. 언어를 다루는 에두아르도 (Eduardo Kohn) 세밀한 논증을 잠시 빌려봅니다. 인간의 언어를 포괄적으로 보면 기호학의 부분집합이고, 숲의 모든 생명은 각자의 기호가 있다고 봅니다. 언어라는 특정 부분집합에 정통한 인간이, 언어를 절대선으로 놓고 보면 여집합이 하위로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그저 다른 기표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배운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우리 인간의 경험 안에 머물며 안에서 평화로운 우물 같이 속좁은 사유체계일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숭상하는 가치인 인간성(humanity)은 더 넓은 관점으로 보자면 편견에 가득찬 인간우월주의 단어일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동물과 식물을 포괄하는 비인간을 지구의 일원이며 평등한 존재라고 가정한다면, 인종차별(racism) 해당하는 종차별주의(speciecism)이고, 자연을 하위 존재로 취급하는 오리엔털리즘의 확장판이 있으니까요.

 

그런면에서 책에 소개된 많은 철학자들은 처절하게 자기 인식을 깨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을 자연의 일원으로 보고 이미 갖고 있는 언어와 인지능력을 특수성으로 삼아 아무도 모르는 일반론을 유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지불식간 자아를 구성하는 인간중심주의를 의지와 지성으로 극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논증이 다소 거칠고 때론 조잡하며 견강부회와 침소봉대의 혐의가 보일지라도, 제겐 흥미로운 사고의 실험실 같아 좋습니다.

 

예컨대 낙태를 바라보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태아의 존재론은 어떨까요. 만일 태아를 독립된 생명으로 행위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모체는 태아의 생존을 위한 환경이나 자원으로 간주되기 쉽습니다. 반면 임신여성의 행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도덕적 논란은 차치하고) 모체의존성이 강하게 부각되어 여성의 책임이 과해집니다. 양비가 맞는 지적인데 그럼 태아는 어떤 존재인가요. 이 논점을 파고들던 캐런 버라드는 태아는 기술로만 발견되므로 양자론적이며 조건적 존재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제도와 도덕의 총체로 표현합니다. 저기요 답은요? 저같은 비전공자가 보기엔 임시방편이자 슬몃 도망가는 답변같습니다. 그럼에도 태아의 존재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자체가 좋았습니다.

 

결국, 책에 나온 대부분 학자는 비인간 존재에 새로운 존재감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신유물론자입니다. 마르크스 시대의 유물론과는 뚜렷이 궤를 달리 하지요. 전지구적 공간과 우주적 시간에서 사유합니다.

 

그러다보니 나오는게 인류세(anthroprocene) 개념입니다. 인간이 지구에 끼친 해가 너무 커서 시간 지나 보면 명확히 지금 우리의 시대는 플라스틱과 인공합성물의 지층을 남기게 될거고, 후세에 누군가는 인류란 존재들이 만행을 저지르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시기를 인류세라 부를 것이란 자각입니다. 이런 스케일로 보면 우리의 존재는 중립적으로 제 자리를 잡습니다.

 

또한, 모든 존재의 평등한 존재감, 지구라는 유기체로 보면 비인간에게도 지구의 사용권을 주는 사물 의회(parliament of things) 있어야 한다는 관점도 일견 수긍이 갑니다. 흑인이나 여성은 사회의 구성원이면서도 정치적 행위를 하지 못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확장해서 비인간 존재들도 그렇다고 생각해보면 또 흥미롭습니다. 어떻게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할지를 모색해야 하는지 생각이 닿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 자연을 지키자는 유틸리티 개념보다, 같이 존재하는 지구를 위한 커뮤니티 개념으로 바라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몇몇 연구자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존재감에도 많은 시선을 던집니다. 예컨대 인터넷을 거대사물(hyperobject) 본다는지, 미디어를 매체의 물리적 특성에서 보기도 하고 시대적 의미로 읽어 보는 미디어 고고학적 시선도 흥미롭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을 격하한 반동으로 비인간을 세우는데만 천착하지도 않습니다. 도시의 문제로 들어가면 도시인을 하나로 취급하는 몰개성적이고 억압적 정책과 설계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스리프트는 도시 안에서의 인간 존재가 복수성이 있음을 갈파하고 결정론에서 벗어난 감각적이고 비재현적인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결론은 윤리적 도시지만 사고의 전개 과정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Inuit Points ★

사실 곱씹어 읽느라 부러 오래 읽었습니다.  읽고 다시 한번 펼쳐봐도 새롭게 읽힐 정도로, 제겐 낯설고 겉돌기도 합니다.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많고 바로 수긍하기 어려운 논지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반년이나 남은 시점에 책을 올해의 5권안에 올릴 정도로 좋았습니다. 아니 10년간이라도 5안에 들어갈 같습니다. 인종차별주의, 오리엔털리즘, 성차별주의의 연장선에서 인간우월주의가 있을  있다는 생각을 어찌 해보겠습니까. 낱낱의 글줄과 결론보다, 일관되게 시도하는 사고의 전복, 관점의 이동, 차원의 고양이 제겐 무척 생각의 훈련이 되었습니다. SF같은 상상의 자극이 해머로 두뇌를 쳐서 말랑하게 만드는 느낌마저 듭니다.

 

제겐 고정관념과 결별을 선언했던 올해입니다. 색다른 구경을 하고, 낯선 사고를 하고, 생경한 분야의 책을 읽으려 노력하는 중이라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만듬새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스물 다섯 명의 교수가 스물 다섯 사상을 각자 소개하는 자체가 이미 망하기 딱 좋은 세팅입니다. 그럼에도 책은 하나하나 글이 영롱하고, 모아서 울림이 있습니다. 심지어 각 장마다 이쁘고 시사적인 삽화까지, 물리적 형식에서도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다섯 채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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