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日常/Project L (93)
Inuit Blogged
일곱번 째 답사지는 부석사다. 가보진 못했을 망정, 모르는 사람은 없는 국민 기둥,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예전에 교과서에서 봤을 때 배흘림이 뭔지, 주심포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외웠던 그런 곳. 다른 건축과 달리, 부석사는 지방에 있어 멀다.쉽게 접근하지 못하니까 가기전에 공부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점.우리나라에 부석사가 둘 있다. 서산 부석사와 영주 부석사.이중 영주 부석사가 흔히 유명한 그 부석사다.서산 가서 배흘림 기둥 찾는 사람 꼭 있다. 영주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화엄종 본찰이다.고려 이전의 목조건축이 우리나라에 다섯개 있는데 그중 하나다.봉정사 나오기 전에는 최고 오랜 목조건축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면, 그깟 목조건축 오래된게 무슨 큰 일일까.오래가는게 결코 쉽지 않..
딸이 꼽은 리스트에는 없지만, 파주까지 갔는데 헤이리를 두고 그냥 올 수는 없는 일.귀뜸을 미리 받은 딸은, 헤이리에서 가보고 싶은 곳도 밤새 정리를 해 두었던 참. 파주출판도시는 철저한 계획도시다.열화당 이기웅 대표의 발의로 정부 지원을 얻고,건축가 승효상가 마스터 플랜을 잡아 각 섹터별로 엄격한 통일감 아래 디자인이 스며든 미학적 도시다. 그래서 각 건물이 따로 놀지만 어우러지고,기하(geometry)나 재료에서 상응하는 일관성이 압권이다.발랄한 창의가 단정히 줄 맞춰 있는 엔트로피 공작 도시랄까.아쉽다면 책 읽는 문화가 사라져 도시 전체가 쇠락하는 중이란 점. 그에 비하면 헤이리는 절제미가 확실히 떨어진다.방임적이고 그래서 인간적이다. 잔디에 발자국으로 길내듯 자연스러운 인간성보다는,공기좋은 산에 ..
여섯번째 답사지는 파주출판도시다. 건축을 꿈으로 정하기 이전부터 딸이 한번 와보고 싶어했던 곳이다.차타고 지나가다 본 풍경이 참 좋았나보다.또 그런 시각적 진동이 농축되어 꿈의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하 15도로 수도권 한파가 심한 날 딸과 아빠는 길을 나섰다.이젠 딸이 알아서 어디어디 갈지 미리 조사를 해 놓는다.밤늦게까지 검색한 흔적이 길었다. 파주출판도시는 내 책의 기획단계에서 출판사 미팅을 하려 들른 적이 있다.그땐 건물 안 돌아가는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엔 순수히 외양만을 탐닉하는 날이다.그러다보니, 당시엔 그냥 멋지군하던 건물의 실루엣이 전혀 다르게 와 닿았다. 정말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이고.여기에 조경 더해 모아 놓으니 문화다. 여러가지 심상이 떠올랐다.한적하고 여유롭..
아들아.. 새학기 지나기 전에, 2회독을 했으면 좋겠다..아빠의 제의에 따라, 아들, 다시 한달간 원서 읽기에 돌입.그리고 새 학년 올라가기 전 마지막 날인 3월 3일, 아들은 2회독을 완성했다.자그마치 4100 페이지. 사실, 한글 책일지라도, 두달 동안 한가지 주제만 읽는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부단한 자기자신과의 싸움이다.천재의 조건이 흔히 머리라고 생각하지만, 인내심이 기본 바탕이다.아빠의 다소 황당한 가이드를 믿고 따라준 아이가 고맙고 기특하다. 결과는? 아이 말에 따르면, 첫번째 볼 때 놓쳤던 많은 부분이 더 보였다고 한다.아마 그럴 것이다.처음엔 단어가 그렇고, 다음엔 시제가 그렇고 또 더 읽으면 미묘한 뉘앙스나 어법이 눈에 보일 것이다.그 모든 걸 한술밥에 배부를 수 없다.한국어 배울 때..
아들의 영어실력을 단숨에 늘리기 위해 해리포터 원서읽기를 결정한 부자.단어 몰라도 머뭇거리지 마.그냥 쭉 가는 거야.정 이해 안 가는 단어는 따로 적어놓고 챕터 끝날때 쯤 확인하는걸로 하자.오케이?영어는 싫어 해도, 해리포터는 좋아하니 아이도 생각 이상으로 열심히 읽었다.한 다섯권 쯤 읽었을 때인가. 밥 먹다가 재미삼아 영어로 물었다. 지금 읽는 내용이 어떤지.그런데 깜짝 놀랐다.정말 기대도 안 했는데, 아이가 영어를 줄줄 말한다.물론, 방금 읽던 내용이긴 하지만, 아이가 문법같은 부차적 고민을 안하고 말을 쉽게 술술 한다.잠자코 듣던 나와 딸은 경악을 했다. 됐다. 생각 이상으로 효과가 좋았다.아이의 두뇌를 영어에 담가 놓았더니(immersion) 영어식으로 말하는게 편해진듯 하다.단어에 시제, 수일치..
요즘 '딸 건축가 만들기' 시리즈가 지인 및 구독자분들로부터 잔잔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듯하다.그러다보니 종종, 아들은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는가 하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학교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집안 분위기를 고려하면, 아들은 착실히 전인교육을 밟아가는 중이다.특히, 운동과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교육방침에 따라, 건강히 잘 놀고 책 많이 읽고 생각 많이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어려서부터 내가 읽는 어른 책을 같이 읽게 하여 왠만한 직장인 부럽지 않은 독서량은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고 믿고 있다.다만, 어려서부터 영어를 좋아하지 않아 영어가 약한 것이 아들의 취약지구다.그전에는 그냥 두었는데,중학생이 되고 나니 이 부분에 대한 심대..
다섯 번째 답사 여정은 국립현대미술관이다. 건축가 김태수의 작품으로, 두가지 포인트가 관심이었다.첫째,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중시한 건축가의 이념.둘째, 당시 위세 등등한 스폰서였던 군부의 위세에도 눌리지 않은 당당함. 둘째 관련해서 전해지는 에피소드가 있었다.김태수 건축가가 선정되어 설계안이 나왔을 때, 정부관계자가 주장했다."국립미술관인데, 좀 더 한국적인 색채가 들어가야 하지 않겠소? 팔각정을 얹는게 어떻겠소?""지금 저게 한국적인 디자인입니다. 그리고 팔각정이 조선적인 요소지 어째 한국적이란 말입니까?" 그래 그거다. 한국적이라하면 왜 고전미만 생각하는지.그 당당함이 좋았다.재미건축가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현대미술관은 건물 자체도 좋았지만, 내부에 빼곡한 미술품들의 창의가 즐거웠다...
"따라 와라." 대학본부로 차를 몰았다. 다행히 당직 서는 분이 한 분 계셨다.문 두드리고 사정을 말씀 드렸다. '이러 저러해서 우리 딸에게 건축조경전문대학원을 보여주고 싶은데 못 찾겠습니다.''네.. 우리 대학원에는 전문대학원은 세가지가 있고 블라블라.. 하지만 건축조경전문대학원이란 없습니다.''네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약 5년전 부터 검색에서 사라졌습니다.''흠.. 그런가요?' 나와 딸의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 기록을 보여 드렸다.순간 반짝.. '그렇다면 잠깐 기다리세요. 예전부터 계시던 선생님께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영하 십도가 넘는 추위에, 얼고 딱딱해진 몸을 따뜻한 방 의자에 앉아 좀 녹일 무렵,행정실 직원분이 다시 오셨다. '다른 선생님이 4년전에 그런 건물을 본 적이 있다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답사다. 서울대 병원이 미스테리 퍼즐을 풀어 나가는 인디아나 존스형이라면, 이번 답사는 징글징글 몸 고생이 심한 007 카지노 로열 스타일이다. 딸이 가고 싶어한 곳의 이름은 정확히 '경희대 건축조경 전문대학원'이다.서현의 책에서 찜해둔 곳이다. 당연히 휘경동으로 가려 했지만, 다행히 딸이 미리 알려줬다. "아빠, 서울 아니고 수원캠퍼스에 있대요." 날을 잡아 용인으로 향했다.출발한지 30분도 안되어 금방 경희대 국제캠퍼스에 도착한 것 까지는 좋았다. 어디지? 사실 문제의 조짐은 출발 때 느껴졌다. 차량에 붙은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내비에서 모두 목적지인 건축조경전문대학원 이름이 안 떴었다.가끔, 정확한 이름이 아니면 안 뜨는 경우가 있어 그렇거니 하고 가장 비슷한 예술디자인대학원..
셋째 장소는 김옥길 기념관.연대와 이대 사이에 있다. 이화여대 교정을 가로질러 후문으로 갔는데,새삼 이대의 리노베이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예전에는 이 캠퍼스가 좁고 답답한 느낌이었는데,이젠 탁 트인 공간에 잘 쌓여진 유틸리티 공간. 김옥길 기념관은 몹시 실망스러웠다.건물 자체는 미감이 있으나, 카페로 사용중이라서 그런지 관리가 엉망이다.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비단 옷 입고 부엌일 하는 가난한 손녀의 모습. 스스로 택한 것도 아닐테고 삶에 부식되었으니 남루하다 말하기도 어렵다.안에 들어가려던 계획을 접었다.차 한잔 마시며 콘크리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감상하려던 것인데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건물의 명칭을 준 인물에 대한 매력도 못느끼던 바다. 건축이 그런게 재미나단 생각을 했다.기능과 예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