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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Blogged
과연,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를 잘했건 못했건, 좋아하든 아니든 매우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입니다. 책은 일종의 컬럼 모음집이며, 몰랐지만 요즘 컬럼으로 필명을 날리는 교수의 글이라 잘 읽힙니다. 중앙SUNDAY에 연재했던 컬럼들에 살을 더 붙여 만든 책 같습니다. 그래서 컬럼 특유의 팽팽한 글은 전개가 단단하고 짜임도 어김 없습니다. 책의 한계도 거기에 있습니다. 낱글마다 힘을 주었기에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 인상, 교훈은 찾기 어렵습니다. 재기 넘치는 문장은 책의 호흡에선 흩날리고, 매 편마다 힘준 주장은 가닥없이 맴도는 느낌입니다. 제목이 죄인입니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은, 최소한 제겐 이런 인상과 기대를 주었습니다. 공부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공부하는게 나은지, 공부해서 무엇을 얻을지 ..
"아, 마음이 힘들어 못 읽겠다." 책을 마치는데 자그마치 석달 반이 걸렸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 게다가 K리그의 이야기일 뿐더러, 나의 팀 성남FC의 찐팬이 쓴 책인데도 말이지요. 비유를 하자면, 파산 위기에 놓인 중년이 우연히 발견한 중학생 때의 일기를 보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성남FC는 초반에 잘했고 중반에 아슬아슬했다가 종반에 아깝게 되었고 결국 팀이 고장나 버렸습니다. 강등이 거의 확정이다라고 생각하다가 시즌 종료 25분전 쯤 극적인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졸깃했지만, 성남팬은 이와 똑같은 시즌을 2016년에 이미 한번 치렀던 바 있습니다. 당시도 시즌 중반까지 우승을 다투다 한끝 차로 하위스플릿에 가더니 2부리그로 강등되었거든요. 책은 성남FC의 팬이자 작가인 저자가 직..
블리츠(blitz), 번개란 뜻이지요. 제가 블리츠란 단어를 처음 들은건, 제가 좋아하는 풋볼 팀인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블리츠 전술이란 이름이었습니다. 블리츠는 독일어 전격전(blitzkrieg)에서 나왔고, 딱 전격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번개같이 짓쳐들어가는 전술은 손자가 이미 정리해두었지요. 그 유명한 풍림화산음뢰에서 마지막 네 글자가 전격전입니다. 故 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難知如陰, 動如雷霆 그러므로 빠르기는 질풍과 같고 서행하기는 숲처럼 고요하고, 침략은 불처럼 기세가 왕성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산처럼 진중하고, 숨기는 어둠처럼 안 보이게, 움직일 때는 우뢰처럼 거세다. 그리고 블리츠스케일링, 전격 성장이란 말도 있네요. 누군들 성장하고 싶지 않겠으며, 기왕이면 빠르게 성..
최근 일입니다. 매우 큰 세계관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첫 착점이 어그러졌습니다. 잘못될 확률이 5%도 안될 일이어서 다들 놀랐습니다. 막상 제가 놀란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어차피 포석 중이고 앞으로 수십 수를 더 둘거니 한 수의 문제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다만 이기고 싶다면, 그 수를 놓은 과정을 복기하며 다음 수를 더 잘두는 게 저한텐 더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잘못을 보는 관점이, 우리 쪽의 느린 의사결정, 관례적 절차, 딱딱한 문화 등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은데, 이를 쉽게 상대방의 옹졸함과 욕심, 모자람으로 쉽게 귀인하고 결과를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점입니다. 대형 조직에서 재무적으론 사소한 일이지만, 원인에 대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데는 실망감이 깊었습니다. 이유..
지인 소개로, 미슐랭 받았다는 삼청동의 프렌치 레스토랑에 갔다. 이곳은 매번 코스요리의 컨셉이 있는데, 전에 갔을 땐 '별의 향기를 맡다'는 주제로 어린왕자가 나오고 그랬다. 이번엔 영화테마라고 한다. 메뉴와 빵 차림부터가 심상치 않다. 처음엔 영화 매거진에 이 식당이 소개되어 잡지를 디스플레이 해 놓은줄 알았다. 그게 아니고 그냥 매거진을 차용해 메뉴를 만들었단다. 전체 코스가 영화의 키워드로 구성되었는데 소개하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다. 뉘벨 퀴진 계열의 프렌치 요리에서 셰프가 내는 한턱인 아뮤즈 부시. 그냥 예쁜 애피타이저 같지만, 내면은 다르다. 영화관의 3대요소인 땅콩, 팝콘, 오징어를 재료로 쓰고, 트러플 같은 재료로 프렌치스럽게 해석했다. 여기서 이미 머리를 띵 한대 맞은 느낌. 아뮤즈 부시가..
예술은 본능일까요? 일견 쉬워 보이는 명제지만, 조금 깊이 과학적으로 규명하자고 달려들면 막상 쉽지는 않은 이야기입니다. 영유아 때부터 인간은 미술이든 음악에 반응함을 보기 때문입니다. '끼'를 보이거나 즐기는게 느껴지죠. 만일 이게 본능이라치면, 인류는 왜 이런 능력을 진화적으로 보유하고 있을까요. 생존에 도움이 될까요, 아님 다른 능력의 부산물일까요. 이게 딱부러지게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인간에게 진짜 예술 본능이 있는지, 있다면 왜 그게 생존과 번영을 위해 왜 필요했을지 진화심리학적으로 규명해보자는게 신경미학(neuroesthetis)입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입니다. 좀 쉬운 예부터 가 봅니다. 단맛은 왜 단맛일까요. 이 허망한 질문에도 진화는 작용합니다. 단맛 자체는 미각 수용기와 ..
니콜라(Nikola)라는, 미국의 자동차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차 한대 팔지 않은 신생회사인데도 상장되자마자 잠시 현대차 시총을 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지요. 한화에서 초기 투자를 해서 1조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봤다고도 하고, 최근엔 실체 없는 사기극이란 소리도 있습니다. 왜 이리 난리 법석일까요. 니콜라가 수소전기 트럭을 만드는 업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수소가 이 난리일까요. 무지의 탓이지만, 솔직히 저 역시 작년까지만해도 수소차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전망도 없었습니다. 막연히, 배터리가 있는데 수소 연료전지가 무슨 소용일까 싶었습니다. 그러다 업무상 필요로 약간의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되었고, 뜻밖에 수소전지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이 책 덕입니다. 제가 수소전지가 배터리보..
딱딱한 역사책일거라 각오하고 샀는데, 알고 보니 재미난 카툰이었다. 만일 이러면 왠지 수지 맞은 느낌일겁니다. 이 책이 딱 그랬습니다. 일에 필요해 공부하려고 읽었는데,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문장이 유려해 술술 읽히고, 한눈 팔기 어렵게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책은 15개 챕터에 걸쳐 성장, 사랑, 식욕, 성 등 인체의 작동을 관장하는 다양한 호르몬을 설명합니다. 각 챕터는 어떤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해당 호르몬과 관련한 과학자나 의사의 분투를 적는 일관된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눈에 보면 어이없는 생각, 황당한 실패, 집요한 노력, 과감한 가설과 끈기 있는 실험 등의 이야기가 천일야화처럼 흘러나옵니다. 그러면서 해당 호르몬에 대해 조금 더 이해가 깊어집니다. 의외로, 책의 일관된 형식이 주는..
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 남녀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낸 이 개념이 연애를 만나면, 수많은 공식이 생겨납니다. '남자는 사냥꾼이니 일단 거리를 두며 밀당을 해라.'에서 시작해 문자 씹는 법, 튕기며 시간 끄는 법, 남자를 은밀하게 조종하는 여우가 되라는 등 여러 '초식'이 전승되어 오지요. 스낵 같은 '연애 지침서'도 많이 나왔고요. 이런 조류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하버드에서 연애에 대한 강의를 해서 유명해졌던 내용을 책으로 냈나봅니다. 책의 지향점은 충분히 수긍가고, 좋은 논점도 많습니다. 다만 진화생물학적 논의에 매몰되지 않고자 하는 강박으로, 아예 남녀의 차이 자체를 부정하여 논지를 달성하려는데서는 다소 의아합니다. 예컨대, 저자는 "남녀가 다르게 태워났다고 믿을 경우, 변화를 위해 우..
행위자 연결망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이라고 있습니다. 인간이든 아니든 세상 모든 존재는 상호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이론입니다. 말이 어렵지요. "사무라이는 검객과 칼의 제휴로 이뤄진다"는 게 제가 예전에 읽었던 ANT 사례입니다. 당시, 꽤 기이하지만 흥미로운 발상이구나 정도로 넘어 갔었습니다. 누군가의 호평과 아방가르드한 제목에 끌려 읽은 이 책, 실로 경이롭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사고의 전복을 시도합니다. 책은 지식의 최전방에 서 있는 25인 학자의 주요 견해를, 우리나라에서 동일 주제를 연구하는 25인 학자가 한명씩 맡아 소개하는 형식으로 적었습니다. 관점이 다양하되 들쭉날쭉하고, 극단을 향하되 보폭도 제각각입니다. 하지만 점묘로 큰 그림이 완성되듯, 각각의 점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