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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Blogged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을 읽고 신유물론의 매력에 푹 빠졌더랬습니다. 길게 보는 미래와 지구적 시간의 관점에서 환경과 인간의 존재의미, 관계를 두고 다양한 실험적 사고를 하는 점이 좋았습니다. 배우고 상상을 자극하는 지점들이 많았지요. 그래서 내친 김에 데이비드 하비를 읽었습니다. 사회주의를 지리학에 접목한 천재란 소리만 듣고 꾸역꾸역 읽었지만 하나도 재미 없었습니다. 논증은 촘촘하지만 모든걸 사회주의와 공간의 개념으로 붙잡아 두는데 질렸달까요. 본인에겐 재미날지 몰라도 독자는 고역이었습니다. '지리한 지리학'이라고까지 생각했었지요. 사변적 내용은 대개 한챕터 정도만 재미날 경우가 많지요. 반면, 이 책은 그냥 경제사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집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읽는 동안 앞의 두 책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빵은 왜 맛있지? 초콜릿은 왜 달고 맛나지? 저 이는 왜 아름답지..?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나요? 아름다움과 좋음은 크기, 질감 같은 절대적인 물리 특성이 아닙니다. 진화를 통해 좋게 느껴지는 거죠. 예컨대 단맛은 탄수화물이 풍부해 매우 효율적인 에너지원입니다. 단맛을 좋게 여긴 어떤 개체들은 단맛 나는 먹거리를 추구하여 더 많이 살아남았고, 단맛을 쓴맛처럼 싫어한 개체들은 아마도 진화적으로 패퇴했을겁니다. 그래서 우린 단맛이 좋은 맛이라고 느끼는 후손인거고요. 미학도 그러합니다. 대칭과 발색 등 성적 건강함을 잘 드러내는 상대를 좋아하는 유전자를 우연히 갖고 태어난 무리는 후세가 융성했고, 성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개체를 좋아하는 유전자를 지닌 개체들은 (당대에는 멀쩡했을지라도) 후손이 적거나, 약하..
굳이 따지지면 제 잘못입니다. 몇 달 전 스윙 댄스를 시작하면서 스윙과 관련된 책을 여럿 샀습니다. 이 책은 스윙댄스 소재의 소설인가보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사 두었습니다. 그러다 차례가 되었고, 읽는 내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은 딱 이거 하나였습니다.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당연히도, 예술이 반드시 상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올드 미디어에서, 특히 일방적 전달 성향이 강한 예술 작품쯤 되면, 의도된 불친절은 감상하는 사람의 적극적 개입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결과로 사고의 전복이나 깨달음, 발견과 통찰 등 상호작용의 고리를 완성하는 기제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추상화나 현대무용이 그렇듯이요. 언어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영화나 소설도 불친절함을 이용해 독자와..
"똑똑한 사람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그들이 별로 똑똑하지 않은 이유로 갖게 된 믿음을자신의 똑똑함으로 쉽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셔머 지적설계론자들의 진화론 부정은 별로 새롭지 않을뿐더러 재미까지 없습니다. 뭔가 말이 통해야 논쟁도 의미가 있지, 현학적 수사와 말꼬리잡기, 메신저 공격하기, 급하면 차단 후 잠수 등 논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오래된 블로거이자 제가 존경하는 쉐아르님 같은 경우, 기독교인이지만 합리적 사고와 인간애가 체화된 분이시지요 . 그러다보니 쉐아르님 포스팅은 온갖 창조론자 사이비 과학자들의 콜로세움이 서는 곳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한번 댓글을 봤더니 이런 주장도 있더군요. "매번 말을 바꾸는 과학은 가설의 덩어리일 뿐이다." 하아.. 내가 현재 믿..
친구가 이 책을 선물해준건 꽤 오래되었고, 대기열에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당장 읽어야할 책이 많았던게 직접적 이유입니다만, 중간에 가벼운 책을 읽고 싶어 집었다 놓은 적도 있습니다. 당시 숨가쁘게 돌아가는 프로젝트들이 있어 이런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핏 표지와 도입부를 읽어 보니 개인의 성장과 아픔, 공감, 힐링 이런 책 같았습니다. 그리고 연말 되고 코로나 거리두기로 기어 한단 내리고 줌아웃해서 세상을 보는 시점에서 이 책을 다시 집어 읽었습니다. 배울 준비가 되었을때 스승은 나타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이 많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책을 최악으로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수많은 좌절과 역경을 극복하며 대의에 헌신한 이야기. 이런 글은 전형적이..
라면 먹을 때 어떤 취향이신가요? 면을 그대로 넣는다 vs 반 접어 넣는다 스프 넣고 물 끓으면 면투입 vs 면이 익으면 스프 투입 꼬슬한채로 먹는다 vs 부들부들 푹 익힌다 계란을 추가한다 vs 계란 절대 반대 햄이나 참치를 넣어도 좋다 vs 햄참치 결사 반대 대파를 넣어도 좋다 vs 파 절대 반대 치즈를 마지막에 올려도 좋다 vs 치즈 절대 반대 좀 더 갈래가 있지만 전형적인 선택지고, 이 조합에 따라 라면의 맛은 무궁하게 달라집니다. 취향이 사람마다 다 다를테지요. 이 작지만 장대한 라면 세계관에는 호화현상, 캡사이신의 지용 프로세스, 끓는점의 화학 뿐 아니라, 어릴 적 어머니의 보살핌의 추억이나 추운날 따끈했던 기억까지 한사람의 세상이 레시피에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라면 레시피는 쌍둥이도 다를수 ..
저는 그야말로 흙수저입니다. 사교육은 없었고, 학교 공부 이후론 집안의 지원 없이 무일푼으로 시작해 가정 이루고 잘 살아왔습니다. 도를 닦듯 많은 노력을 했고, 실력을 키우려 공부와 수련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먹고 사는데 크게 문제는 없는 상황이지요. 하지만, 언젠가부터인지 이게 다 내가 잘해서만은 아니란 점을 깨닫습니다. 제 운은 뭐가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못사는 나라에 태어났지만 역대급 성장률을 기록하는 시기에 살았다는 점이 첫째 아닐까 싶습니다. 기회는 범용재고 사람이 희소자원었습니다. 그래서 노력과 결과가 선형적이고, 시간축에선 복리적인 수혜를 받았습니다. 또 큰게 있지요. 남성으로 태어나서 부지불식 해를 끼치면 끼쳤지 성별로 인한 손해를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 더 하면, 결..
과연,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를 잘했건 못했건, 좋아하든 아니든 매우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입니다. 책은 일종의 컬럼 모음집이며, 몰랐지만 요즘 컬럼으로 필명을 날리는 교수의 글이라 잘 읽힙니다. 중앙SUNDAY에 연재했던 컬럼들에 살을 더 붙여 만든 책 같습니다. 그래서 컬럼 특유의 팽팽한 글은 전개가 단단하고 짜임도 어김 없습니다. 책의 한계도 거기에 있습니다. 낱글마다 힘을 주었기에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 인상, 교훈은 찾기 어렵습니다. 재기 넘치는 문장은 책의 호흡에선 흩날리고, 매 편마다 힘준 주장은 가닥없이 맴도는 느낌입니다. 제목이 죄인입니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은, 최소한 제겐 이런 인상과 기대를 주었습니다. 공부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공부하는게 나은지, 공부해서 무엇을 얻을지 ..
"아, 마음이 힘들어 못 읽겠다." 책을 마치는데 자그마치 석달 반이 걸렸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 게다가 K리그의 이야기일 뿐더러, 나의 팀 성남FC의 찐팬이 쓴 책인데도 말이지요. 비유를 하자면, 파산 위기에 놓인 중년이 우연히 발견한 중학생 때의 일기를 보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성남FC는 초반에 잘했고 중반에 아슬아슬했다가 종반에 아깝게 되었고 결국 팀이 고장나 버렸습니다. 강등이 거의 확정이다라고 생각하다가 시즌 종료 25분전 쯤 극적인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졸깃했지만, 성남팬은 이와 똑같은 시즌을 2016년에 이미 한번 치렀던 바 있습니다. 당시도 시즌 중반까지 우승을 다투다 한끝 차로 하위스플릿에 가더니 2부리그로 강등되었거든요. 책은 성남FC의 팬이자 작가인 저자가 직..
블리츠(blitz), 번개란 뜻이지요. 제가 블리츠란 단어를 처음 들은건, 제가 좋아하는 풋볼 팀인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블리츠 전술이란 이름이었습니다. 블리츠는 독일어 전격전(blitzkrieg)에서 나왔고, 딱 전격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번개같이 짓쳐들어가는 전술은 손자가 이미 정리해두었지요. 그 유명한 풍림화산음뢰에서 마지막 네 글자가 전격전입니다. 故 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難知如陰, 動如雷霆 그러므로 빠르기는 질풍과 같고 서행하기는 숲처럼 고요하고, 침략은 불처럼 기세가 왕성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산처럼 진중하고, 숨기는 어둠처럼 안 보이게, 움직일 때는 우뢰처럼 거세다. 그리고 블리츠스케일링, 전격 성장이란 말도 있네요. 누군들 성장하고 싶지 않겠으며, 기왕이면 빠르게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