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렝에서 하루 자도 좋다 싶을 정도로 감흥이 많았던 하루입니다. 그래도 숙소로 복귀는 해야하기에 나타 사서 리스본으로 복귀합니다. 트램은 줄이 길어 멋스러운 이동은 포기하고 줄이 짧은 버스를 탔습니다.

 

대신, 재미한번 느끼고자 소드레 역에서 내려 바이후 알투로 올라가는 케이블 트램, 아센소르(ascensor) 탑니다. 이건 바이후 알투를 걸어 다니던 , 우연히 올라오는 트램을 봐두었던건데, 벨렝의 산뜻한 전원적 풍경에서 다시 복닥한 시내로 오는 모드 전환에 좋은 아이템일거라 생각했습니다.

 

알파마보다는 덜해도 길이 네모반듯하지는 않은 시아두 거리를 구글 맵따라 찾아서 아센소르 정거장에 들어섰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홍콩의 빅토리아 피크 올라가는 트램과 유사합니다만, 규모와 풍경은 나이아가라 폭포 앞의 목동 인공폭포지요.

 

그래도 비카 아센소르(ascensor da bica)는 색다른 풍미가 있습니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처럼 낮은 지역에서 바이후 알투로 올라가는 실질적 대중교통이라서 관광객과 현지 풍경이 자연스레 뒤섞입니다. 15분에 정도 다니니 한적한 트램 길입니다. 기차길을 가로질러 차들도 간간히 지나가고, 어린 아이는 선로에서 아빠와 즐겁게 놉니다. 트램 길이 하도 짧아 어린 아이도 1/3 오르락 내리락 하며 노는게 함정이지만요.

 


숙소 근처라 매일 한두번 지나는 바이후 알투의 까몽이스 광장은 어느덧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광장을 지나 점찍어 두었던 곳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그렇듯 포르투갈 전통메뉴고, 해물위주입니다. 오늘은 삐리삐리(piri-piri) 소스를 달라고 했습니다. 삐리삐리 소스는 아주 매운 고추를 올리브 기름과 갖은 양념에 절인 소스입니다. 매운맛이 좋은 올리브유와 어울어지는 풍미가 일품입니다. 삐리삐리 소스는 테이블에 내어 놓지 않지만, 현지인들이 늘상 먹는거라서 달라고 하면 99% 확률로 줍니다. 우리나라 식당에서 고추장 주실래요 하는 격이니


실제로 삐리삐리 소스의 매운맛에 익숙해진 포르투갈 사람들이 한국 매운 음식에 가장 적응을 잘한다는 소리도 있습니다당연하지만, 포르투갈은 향신료의 천국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향신료를 배로 실어 날랐던 대항해시대를 거쳤으니까요. 유럽의 입맛을 바꾸었지만, 단위 무게당 금을 능가하는 고부가가치 수입품으로 경제적인 효과도 대단했습니다

 

삐리삐리 소스를 달라는 말에 아저씨, '과연 동양사람 맞군'하는 흐뭇한 미소로 가져다 주십니다. 음식에 살짝 뿌려보니 매콤한게 음식이 입에 맞습니다. 한참을 맛나게 먹고 있는데, 아저씨 오셔서 괜찮냐 묻습니다. '당연 괜찮지요. 우린 한국사람이에요.' 했더니, 그럼 매운 맛에 도전해보겠냐고 물어봅니다. 당연히 . 아저씨는 새로운 삐리삐리 컬렉션 세병을 가져옵니다. 한병은 우리로 치면 핵불맛입니다. 겉에 perigroso, 위험하다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까 걱정된 아저씨, 특별히 댄저러스 댄저러스 강조를 하십니다.

 

방울 뿌려봤더니.. 진짜 맵습니다. 불닭면 정도로 맵네요. 매운걸 먹지만 고통스럽게 매워 원래 레귤라 소스로 바꿔서 먹었습니다. 재미났던 식사였고, 삐리삐리 소스 크기도 작아 사서 여행 내내 들고 다녔네요. 에그타르트 빼곤 뿌려먹어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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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강쪽으로 조금 가면 '발견의 (padrão dos descobrimentos) 나옵니다. 제가 기대를 많이 곳이지요.

 

무슬림이 중동을 장악하고 기독교도의 동방 출입을 통제한건 종교보단 경제적 이해다툼이었습니다. 길이 끊겨 동방무역이 된서리를 맞게 되자 바다의 나라 포르투갈엔 기회가 열렸습니다.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루트를 개척하고, 이어서 바스쿠 가마가 아프리카에서 인도양을 횡단해 고아에 도착한 , 황금의 인도와의 해상 루트를 확보합니다. 계속 동진한 포르투갈은 말라위, 인도네시아 동남아 국가와, 중국의 마카오를 거쳐 유라시아의 극동인 일본까지 갑니다.

 

일본에 미친 영향은 우리가 고스란히 알지요. 빵은 포르투갈 그대로고, 뎀뿌라도 tempora라는 포르투갈 말입니다. 카스텔라도 포르투갈 선원이 전해준 스페인 지방 이름이지요, 까스띠야.

 

해양왕국 포르투갈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 엔히크 왕자입니다. 서열상 왕이 되지 못하니 아예 바다로 에너지를 돌렸지요. 포르투갈이 대외 공세를 취한 사례인 세우타 정복은 좁은 바다 건너 북아프리카 구역을 점령한 것에 불과하지만 의미는 세계적이었습니다. 외침에서 벗어나 포르투갈 제국주의의 시초를 사례이기도 하지만, 바다를 등지고 살던 유럽 열강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항해왕자 엔히케는 포르투갈 남단 사그레스 지역에 항해학교를 설립하고 천문, 해양 선박 기술을 육성합니다. 토대 위에서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가 열린 거지요. 물론 엔히크는 시대와 지리로 읽어야 합니다. 왕권과 포르투갈의 이익에 복무했을 , 대중과 이성 또는 합리에는 관심이 없었지요. 저는 그의 업적으로 그를 기억합니다.

 


나온 김에 알고 보면 좋은 포르투갈의 상징 하나를 소개하면, 장식 달린 십자가를 로고로 사용한 그리스도 기사단입니다. 그리스도 기사단은 템플러인 성전 기사단의 일파였다가 포르투갈 왕실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교황청의 허락을 받고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급속히 포르투갈화 되어, 왕이나 왕가의 일원이 기사단장이 되어 바다 개척의 중심 조직이 되었습니다. 말이 기사단이지 해적단 항해단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 기사단의 십자가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비롯한 모든 마누엘 양식의 필수요소이기도 합니다. 재미난건 현대에도 그리스도 기사단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포르투갈 대통령이 명예직으로 단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발견의 탑에 올라가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바다같이 트인 테주강과 멀리 리스본 시내, 고요하고 아름다운 벨렝 주택지, 멀리 가물거리는 대서양이 파노라마로 보입니다.. 그리고 영예와 욕망이 뒤얽힌 잠시의 찬란한 역사. 아래로 보이는 해양 진출의 역사 지도가 아련합니다.

 


대서양 근처라 비가 수시로 오락가락 하긴 했지만, 해가 제대로 나니 만물에 부서지는 햇살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그레고리우스가 덜컥 리스본에 왔다가 이내 후회하고 베른으로 돌아가려던 , 리스본의 따사로운 햇살에 마음이 녹아 주저앉는 에피소드는 리스본을 사람만이 절절히 공감할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발견의 탑과 인근에서 물과 하늘 그리고 공을 주고 받듯 랠리를 하는 햇살과 바람 속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바르셀로나 여행 우리 가족 최고의 모멘트는 maremagnum 나무 데크였던것 처럼, 리스본 최고의 순간은 벨렝의 강변이 되었습니다. 역사와 의미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의 교감이 그리도 중요하네요.

 


발견의 탑에서 테주 강을 따라 서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벨렝 탑이 나옵니다. 런던탑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수도 방어의 요새였습니다. 대서양에서 리스본으로 들어오면 테주 강이 좁아지는 목을 반드시 지나게 되어 있는데 바로 위치에 대함 포격이 가능한 벨렝 탑이 있습니다. 이건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의 히사리도 마찬가지 입지입니다.

 


외부관계에 있어 대부분 평화로운 탑은 대내적으로는 내내 바빴던 탑이기도 합니다. 또한 런던탑과 마찬가지로 감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징적으로 가장 극악한 형이 벨렝 지하 감옥인데, 가보면 극형인지 압니다. 강이 바다와 가까워 조수 간만의 차가 큰데, 지하 감옥은 만조 물이 차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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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셋째 날은 벨렝 가는 날입니다.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외곽에 있습니다. 리스본 대지진 때 왕가가 화를 면하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공주들이 벨렝의 수목원이가를 가고 싶다해서 왕은 벨렝으로 이동했습니다. 벨렝의 성당에서 미사를 하던 중 발생한 지진에서 벨렝은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왕실도 안전했습니다. 후에 밝혀진 사실은 벨렝이 암반 위에 있어 지진에 강하다고 합니다


이런 우연으로 왕이 건재했고, 멘탈은 무너진채 카르발류에게 리스본 재건과 개혁을 일임해서 포르투갈은 몰락을 면했습니다. 왕이 죽고 도시와 경제가 파탄에 빠진채 왕위계승 전쟁이 나고 민심을 수습한다고 혹독한 종교적 구심점이 되는 왕이 나왔다고 생각하면 오늘날 포르투갈은 매우 다른 모습이었겠지요.

 

전날 미리 사둔 리스보아 카드를 사용합니다. 관광용 카드라서 모든 교통수단 아니라 주요 관광지에 무료 또는 할인으로 입장이 가능합니다. 리스본 시내 여행을 몰아서 때는 매우 효율적입니다.

 

덜컹거리는 트램을 타고 풍경을 정신없이 보다보니 금방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나옵니다. 여기는 신트라의 페나성처럼 리스본 관광객이이렴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라 줄이 항상 깁니다. 시간 아끼려면 10 개장에 맞춰 가야 시간을 줄인다는 딸램의 성화로 아침부터 서둘렀는데, 가보니 효과가 있습니다. 10 정도 전에 도착했는데 줄이 짧아 개장하자마자 바로 입장했습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부속된 성당도 볼만합니다. 여기에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묻혀 있는데, 가장 유명한건 바스쿠 가마지요. 포르투갈의 위대한 문학가로, 바이후 알투에 자기 이름이 붙은 광장이 있는 까몽이스도 있습니다.

 


포르투갈의 융성 시대에 재임한 왕이 마누엘 1세입니다. 이때 지어진 건축물들이 당대의 화려함을 자랑하는데, 포르투갈 특유의 양식이 있습니다. 바다를 상징하는 패턴이 양각된다는 점이죠. 기둥을 보면 돌을 깎아 만든 밧줄과 , 산호초를 비롯해 대작은 바다생물 또는 괴물까지 나옵니다. 이는 바다에 기대어 살고 바다와 싸우며 나라를 발전시켜온 포르투갈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문맹이 많아 성서를 성당 벽에, 역사를 공공건물 벽에 새겨야 하는 중세의 특성도 반영이 된거지만요.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양식의 전범으로 불리웁니다. 피렌체 두오모나 로마 성당 때처럼 한참을 들여다봐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오브제가 눈에 들어오고, 빛이 바뀜에 따라 자아내는 감성이 달라집니다.

 


아침에 일찍 움직여 배도 출출하고. 바로 나타 집으로 갑니다. 벨렝 빵집(Pasteis de Belem) 리스본 여행객의 필수 요소로 알려져 있지요. 나타(pastel de nata) 흔히 에그타르트라고 불리우는 빵의 포르투갈 이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난 에그타르트라는 명성을 먹어본 사람들마다 간증하기도 합니다. 저희 가족은 마카오에서 맛난 에그타르트를 먹고 정도 에그타르트를 찾아 많이 시도했었습니다. 주로 홍콩, 일본과 파리 같이 빵을 만들고 문화적으로 포트투갈과 그나마 연관성이 있는 곳인데요. 그래도 마카오만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에그타르트는 정말 다릅니다. 겉의 페스트리는 졸깃하게 바삭하고 안의 크림은 달지 않으면서도 식감 좋은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맛이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수녀님들 옷에 풀을 먹이는데 계란 흰자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남는 노른자로 에그타르트를 만들었는데 맛이 좋았고, 수도원 빵집에 레시피를 알려줬다고 합니다. 1837년부터 지금까지 빵집에는 항상 세명만 레시피를 알고, 셋은 함께 차를 타지도, 회식을 하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요즘 세상에 역공학하면 못할게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여행의 재미를 위해 브랜드 스토리를 믿기로 합니다. 그게 행복하니까요.

 

밥때가 아니라 맛이나 보려고 들어간터라 넷이서 여섯개를 시켰습니다. 먹다가 다들 입 딱 벌어지고, 먹고 싶어서 6개를 추가로 주문했지요. 주문 받는 핸섬한 서버 아저씨가 '쯧쯔 그럴줄 알았지' 느낌으로 눈을 찡긋합니다.

 

결국 인당 세개나 먹었음에도, 오후에 벨렝 지구에서 한참 놀다 숙소 가기 전에 다시 와서 6개들이 박스를 하나 사갔습니다. 놀라운건, 새로 에그타르트 그 밤엔 배불러 못먹고 다음날 되어서야 먹었는데, 그래도 맛이 훌륭했습니다. 가게에서 방금 만들어 따끈하게 내온 것만 못해도, 다음날까지 파삭함과 크림의 부드러운 질감이 유지되는걸 보고, 뭔가 레시피가 있긴 있나보다 생각했지요.

 

포르투갈 식으로 나타를 먹는 방법은, 고운 설탕과 시나몬 가루를 뿌려 먹는겁니다. 설탕은 단거 싫어해 생략하고 시나몬만 뿌렸는데, 과연 맛이 훨씬 깔끔해지고 많이 먹게 됩니다. ;; 아무튼 이후로도 나타 좋아하는 딸램 덕에 포르투갈 뜨는 날까지 매일 두개는 계속 먹었는데 다 맛이 좋았지만, 벨렝의 이집만한 곳은 봤습니다. 포르투에서 한집이 그나마 비슷.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벨렝의 나타를 먹는 순간, 다른 에그타르트가 맛없어 보이는 저주에 걸릴거다.

 

그래도 어느 레벨되어야 이상적인지 알려면 저주에 걸릴걸 알면서도 먹을 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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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두 박물관을 나와 아름다운 알파마의 골목을 통해 리스본 대성당에 갔습니다. 여기 뿐 아니라 포르투도 그런데 그 도시 본당을 포르투갈에선 그냥 ()라고 하더군요. 저는 라틴 감성이라 그런지 성당 가면 마리아가 제일 좋습니다. 모성과 가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라틴 계 나라 어디나 마리아 성당이 가장 성대하고 시민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브라질과 스페인이 그랬듯 포르투갈도 그렇네요. 특히 대성당의 마리아는 미학적으로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파란 배경에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날고 있는 입체적 레이아웃은 넋놓고 한참을 보았습니다.

 


리스본 대지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상한 이유는 단지 진도가 높아서만은 아닙니다. 하필이면 대지진 날은 리스본에서 모든 성인을 기리는 만성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바로 큰일이 생긴다고 미신처럼 맹신하고, 국가의 자리를 대신해서 종교재판소가 만인을 압제하는 상황에서 리스본 시민은 빠짐없이 동네 성당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미사가 한창인 아홉시 반부터 땅이 뒤집히고 물이 일어서기 시작했지요. 리스본 대성당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상했습니다.

 

대성당을 나와 트램을 타려 몇발자국 걷는데, 알 것 같은 동상이 있습니다. 안토니우입니다. 리스본의 공식 수호성인은 비센트지만, 리스본 사람들이 가장 애호하는 성인은 안토니우입니다. 흔히 파도바의 안토니오라는 맞습니다. 성 안토니오는 뛰어난 설교로 많은 사람을 감명시켰고, 특히 잃어버린 사람과 물건을 찾는데 효험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Saudade와도 통하는 정서네요. 아무튼 이곳 태생이라 리스본 사람들의 최애 성인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리스본 사람에게 파도바의 안토니오라고 하면 싫어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리스본의 안토니우지 왠 파도바의 안토니오냐며.

 

안토니우 성인도 비센테처럼 알아보기가 쉽습니다. 깨달음을 얻을 아기예수가 현신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안토니우 성인을 표현할 아기 예수가 항상 따라옵니다. 딱 봐서 애기 안고 있는 성인은 안토니우지요.

 


그러고 보니 뒤에 아담한 성당이 바로 안토니우 성당입니다. 스페인어 이름이 안토니오, 포르투갈 오면 안토니우인지라 한번 들러보려던 곳이 눈앞에 떡 나타나니, 주저하지 않고 들어가 봤습니다.

 

작지만 정감이 넘치는 성당이었습니다. 인상 깊은건, 지하 석실까지 아주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힘든 몸을 끌고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도 행복한 표정으로 계단을 가고 있던 장면입니다. 진짜 사랑 받는 성인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하늘은 어둑해졌지만 해지려면 아직 시간이 멉니다. 숙소로 가긴 아직 이르니 바이후 알투에 목적지 없이 구경이나 가기로 했습니다. 트램에는 사람이 많아 숨쉬기도 불편할 정도로 끼어서 갔습니다. 28번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나마 한번에 탈 수 있으면 다행인거죠.

 

앞서 말했듯, 서울의 강남 나는 바이후 알투는 꽤나 .. 있겠지만 이땐 모두 지쳐 풍경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체력상 후퇴를 선언하고 숙소로 귀환 작전을 펼쳤습니다. 숙소는 바이샤지구에 있습니다. 지도로 보면 우리 위치에서 바로 직선 거리 수백미터도 안되는데 구글 맵을 돌려보면 아주 크게 돌아서 한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언덕과 저지대간 고도 차이의 탓이지요.

 

뛰어 내릴 수도 없으니 돌아서 걷자, 구글 맵 따라 터벅터벅 걷는데, 중간 쯤에서 아무리 봐도 저기에 길이 있을듯 했습니다. 길이 될 성 싶은 좁은 골목이 보이고, 사람이 지속적으로 들고 나는게 멀리 보입니다. 지친 식구들에게 있는지도 모르는 길로 한번 가보자고 하긴 어려워서, 식구들 잠시 쉬고 있으라하고 저만 먼저 가봤습니다.

 

세상에.

 


길은 없지만 엘리베이터는 있습니다. 원래 저희 투어 리스트에도 있는 산타 주스타 승강기입니다. 원래 바이샤와 바이후 알투 사이 고도차가 심해 만든 엘리베이터로 당시엔 대중교통의 일환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기계장치가 1902년에 완공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요. 당시엔 눈이 휘둥그레해질만한 장관이었을겁니다. 지금은 고전미가 대단합니다.

 


바이샤로 바로 내려가는 길은 없지만 승강기를 타면 바로 가니 재미도 있고 몸도 편합니다. 승강기는 버스회사 소속입니다. 리스본 교통카드가 있으면 그냥 있지요. 줄을 잠시 대중교통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이샤로 귀환했습니다


염두했던 곳을 우연히 발견하는 재미가 컸고, 여행이란게 아는만큼 모르는만큼 각각의 재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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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시간이 길어 생각보다 매우 점심식사를 하고, 파두(Fado) 박물관에 갔습니다.

 

제가 처음 파두를 들은건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였을겁니다. 심야에 라디오에 신경을 내어주던 시절, 갑자기 심장 고동 같은 북소리(이번에 가서 보니 기타 두드리는것이었음) 함께 영혼을 끓여 내어 부르는 노래. 이 별세계에서 온듯한 곡이 무언가 귀기울여봤더니,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검은 돛배(barco negro)'라고 합니다. 노래를 들으며 이름도 낯선 포르투갈은 어떤 나라인지 꿈꾸며 잠들곤 했습니다


이종환 씨가 세계음악 치곤 꽤 자주, 몇달에 한번 정도, 검은 돛배를 틀어줬던것 같습니다. 당시 느낌에, 분명 외국 곡인데도 우리나라 정서와 매우 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십여년 , 베빈다라는 프랑스에서 발표한 신세대 파두를 들으며 또다른 파두의 매력에 빠졌었고요. 베빈다 테이프를 닳도록 들었던것 같습니다.

 

파두는 fatum, 운명이란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나라가 좁고 삶이 질박해 바다로 나가야 있었던 사람들. 처음엔 고기를 잡으러 대서양으로, 나중엔 기회를 잡으러 세상의 끝으로 사람들입니다. 갖가지 사연으로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생겨난게 파두입니다. 우리 민요와도 통하는 정서죠.

 

한발 더 나가면, 파두의 요체는 saudade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한(恨)처럼  단어로 번역 안되는, 포르투갈 정서가 응축된 단어지요. 영어사전 찾아보면 missing으로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그리워 하는 마음입니다. 현지인의 정서를 반영해 의미를 더 채우면,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몇년 전 파두 학교에서 교육을 하는 영상을 있습니다. 객이 듣기에 기교는 훌륭한 학생이지만 사우다드가 없다고 선생님에게 단단히 혼나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성조와 호흡, 심지어 표정까지 일체적으로 표현해야 훌륭한 파두가수라고 합니다

 

처음엔, 파두냐 하며 파두 박물관에 따라왔던 식구들이지만 다들 즐겼습니다. 아버지가 사우다드를 갖고 좋아한 탓도 있겠지만, 이리저리 듣다보면 매력이 있어요. 파두 박물관은 파두 문화 전파를 위한 답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수많은 파두 가수들이 벽화로 모여 있고, 원하는 사람 번호를 누르면 파디스타의 노래를 그 자리에서 지급된 개인기기로 들을 있습니다. 또한 음악 감상실에는 방대한 라이브러리가 있어 헤드폰을 끼고 좋은 음질로 원하는 만큼 음악을 들을 있습니다. 비디오 감상실에서는 파두 뮤지션들의 공연, 아말리아를 포함한 흑백시절 전설적 공연들 실컷 감상할 있습니다. 그외에는 파두 관련한 미술품과 설명들이 있어 찬찬히 보면 빠른 시간에 많은 걸 알고 느낄 수 있지요.

 


저에겐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날도 쌀쌀해서 오후 내내 파두에 빠져 지낼까 생각하던 차, 지나치게 쾌활한 미국인 단체관광객이 들어와 파두 박물관의 평화는 깨지고, 우리 가족은 아쉽게 박물관을 나섰습니다.

 

기기를 반납하며 이리저리 이야기 나누다,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파두가 좋아서 리스본까지 왔어요. 박물관도 참 좋았고요. 밤에 파두 보려면 어떤 방법이 좋아요?"

친숙한 눈매의 직원은 사무적인 속도로 소상히 알려줬습니다

'파두 공연은 알파마 지구와 바이후 알투 지역에 있어요. 바이후 알투는 급이 되니까 값이 높지 관광객이 가기 편하죠. 알파마는 선술집 분위기에 즐기는 곳인데 알아서 걷다가 그냥 들어가면 돼요. 아무래도 여기 모르면 호텔에 말하는게 제일 나아요.

 

오후에 몇군데 더 둘러 보고 호텔 오자마자 프론트 분과 대화하면서 파두 예약을 부탁했습니다. 바이후 알투에 한군데 알파마에 한군데 있는데 어디로 할까 물었습니다. 숙소에서 걸어  있는 바이후 알투로 부탁했지요. 8 시작인데, 시차도 아직 남아 있고 오랜 걸음으로 지친지라 잠시 눈을 붙이고 파두를 보러 갔습니다.

 


직접 파두는.. 정말 단번에 매료될 정도입니다. 여행 프로그램에서 봤던 현지인 정서 물씬 나는 선술집의 파두에 비하면 여긴 정제된 공연 느낌이 더 강했지만, 눈앞에서 피끓는 파두를 들으며 공명하여 끓어오르는 감정은 현장에서만 느낄 있는 부분입니다.

 

1 가수가 20 정도 부르고 잠시 휴식, 이어서 2, 3 이런 순서로 파디스타를 바꿔 진행하는데, 마지막 4 멋진 할배 가수의 공연 때는 1, 2, 3 가수들이  나와서 제창을 합니다. 공간적으로는 방의 모퉁이에 나눠 서서 돌아가며 서라운드 입체음향을 보입니다. 와중에 아는 노래는 손님도 따라 부르고, 식당 전체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사이클 공연이 끝나면 다시 가수가 돌아가며 2부 공연을 합니다. 전에 스페인에서 플라멩꼬 들을 때는 둘째 사이클이 오히려  좋았었습니다. 관광객은 공연에 보고 가고 현지인은 자정 넘어의 둘째 공연에서 어울어져 즐기는거죠. 아무튼 둘째 파두 공연을 보는데 슬픈 노래가 아니라 밝은 분위기의 노래를 듣다가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나서 스스로 의아했습니다. 파두의 힘인지 여객의 지나친 감상인지.

 


 새서 노래를 듣고 싶었지만, 같이 딸램이 노래가 좋지만 졸립다하여 자정 넘어 쯤 몇곡을 두고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바이후 알투 언덕에서 내리막을 걸으며 보는 도시 풍경이, 언덕에 깔린 같았어요. 드디어 리스본 땅에 발이 닿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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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전통음식의 특징은 해산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도 아주 맞습니다.

 

포르투갈 여행 식당에서의 주의점은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 자리 앉으면 빵과 버터, 올리브를 내오는데 이게 유료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든, 관광객 대상으로 사기치는 식당 말고, 처음 세팅된 거에 돈받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포르투갈은 이게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유가 있다고 해요. 해산물 요리가 주문 후에 요리를 시작해서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실제 주문해보니 최소 30 어떤데는 거의 한시간 가까이 소요됩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입맛 다시며 빵과 올리브를 먹는게 현지인의 습성인데, 타국의 관광객과는 문화코드의 충돌이지요. 맛나게 먹고 계산해보니 별도 계산이 거의 10유로 추가되면 기분이 나빠지니까요저희가 집중적으로 애용하는 trip advisor에서 훌륭한 식당인데도 계산서보니 사기당했다고 별점 테러한 미국인들 봤어요.

 

자리 앉고나서 바로 빵을 내오면, 돈받냐 물어보거나 안먹겠다면 알겠다고 가져갑니다. 눈도 안흘겨요. ^^ 포르투갈 음식이 양이 많은 편이라, 먹고 인당 요리 하나씩 정도 시키면 먹기 힘들기도 합니다그런데 나오는것도 케바케 같아요. 관광객이 흔히 오는 곳은 국제화되어 미리 물어보거나 달라기 전에는 아예 줍니다. 그러나 저희처럼 현지인 많은 식당만 찾아다니면 알아두는게 도움 됩니다. 어떤 식당에선 우린 안주고 포르투갈 손님은 갖다 주던데 올리브가 너무 먹고 싶어서 따로 주문을 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먹어야 하는가.

 

일단은 대구와 정어리입니다. 대구는 국민음식으로 천가지 넘는 레시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김치처럼 집안마다 독특한 조리법이 있을 정도지요. 재미난건, 포르투갈에선 대구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대구는 영국 인근 북해나 원해에서 잡아 옵니다. 해양국가 포르투갈에서 국민 식재료인 대구를 전량 수입한다는게 믿어져서 여러 문헌을 봤는데 정말 그래요.

 


역사적으로는 포르투갈의 얼치기 황금기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은 금과 향신료가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유럽 왕실 한때 가장 많은 금을 보유했다고도 하고요. 브라질과 동남아 식민지 덕입니다. 문제는 눈부신 성장의 시기에 넘쳐나는 국부를 국가 개발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귀족 문화가 매우 강한 포르투갈에서 대중을 위한 정치는 뒷전이고 귀족의 삶만 살핀게 문제입니다. 최소한 왕실이 자신들의 안위라도 장기적으로 근심이라도 해야하는데 그러지도 않았지요. 공짜로 재물이 마구 들어오다보니 오늘 온건 오늘 쓰고 내일은 내일의 배가 들어와 해결해줄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팽배했습니다. 점을 카르발류, 폼발 후작은 우려했던거고요.

 

덕에 유럽에서 가장 문맹율이 높고 독실한 (이라고 쓰고 미신같이 믿는) 가톨릭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신으로 윽박지르면 통치하기도 쉽고, 실은 왕가도 맹신을 했어요. '미친왕' 아폰수 5세는 여섯살인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사제인 친척들 손에 키워졌다고 해요. 결국 자신과 포르투갈이 가톨릭을 구할수 있다고 믿고 계란으로 바위치는 전쟁에 나가 전략은 물론 교리와 전술도 없는 전쟁을 일으켰지요. 결국 젊은 왕이 후사도 없이 적진으로 무모하게 돌진하다 허무하게 죽고, 이후 포르투갈은 왕위계승전의 복마전으로 빠져들기도 했었지요.

 

이런 정황으로 당시 맛난 대구를 수입해 먹는게 산업적으로 경제적으로 대수가 아니었고 포르투갈 국민은 수입대구에 입맛이 길들여져 버린겁니다. 그래서 포르투갈 대구의 특징은 먼바다에서 가져오느라 아주 강한 염장이 상태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대구 조리법의 핵심은 염장된 간을 빼내어 대구의 맛을 다시 부드럽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심지어 냉장기술이 발전해 이상 강한 염장이 필요없는 현대에도, 냉장대구를 가져와 굳이 다시 염장해서 판다고 해요. 사람의 입맛은 합리로만은 설명이 안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면 정어리는 포르투갈 바다 전역에서 잡힌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어리는 포르투갈 음식에서 대구처럼 왕의 지위는 아닐지라도, 동네 친구처럼 계절 메뉴를 메우는 친숙한 존재입니다. 실제로 이날도 알파마 골목을 지나는데 현지인들이 밖에서 정어리를 굽는데 냄새에 급속한 허기를 느껴 식당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외에 포르투갈 음식의 특징은 쌀을 매우 많이 먹는다는 점입니다. 자기들 말이지만 유럽에서 인당 소비량 1등이 포르투갈이라고 하네요. 쌀이 많이 나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유명한 빠에야가 있다면, 포르투갈에는 해물밥, 아호스 마히스쿠(arroz de marisco) 있습니다. 빠에야가 사프란을 넣어 좀더 고급스럽고 고슬고슬한 맛이라면, 포르투갈 해물밥은 해물탕 마지막에 퐁당 넣고 졸여준 맛과 비슷합니다. 이탈리아의 리조또와도 다른 풍미에요. 매우 맛있고 서민적입니다. 저는 탄수화물 안먹겠다고 버티다가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맛에 쉴새없이 숟가락질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다소 곁다리지만 포르투갈 감자는 정말 맛납니다. 종자가 다른지 토양이 달라서인지 다른 감자와 사뭇 다릅니다. 먹으면 포슬포슬한 식감이 일품입니다. 삶은 감자는 쳐다도 안보는 제가, 앉은 자리에서 먹고 먹어 알이나 먹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배가 불러 디저트는 생략하더라도 커피 한잔은 해야죠. 포르투갈 커피는 매우 진합니다. 진한 풍미의 이탈리아보다도 한등급씩 진하다고 보면 됩니다. '커피' 주문하면 매우 진한 에스프레소가 나오고, '아메리카노' 시키면 이탈리아의 카페 정도 진한 녀석이 나옵니다. 물론 커피가 연료인 저에겐 맛만 있으면 상관 없습니다. 아무튼 맛이 상당히 좋으니 현지가면 묽게라도 드셔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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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클래식맨 2018.02.03 20:05 신고

    맛있겠네용 ㅎㅎ

둘째 날은 밝았고 제일 걱정이 되는 날입니다. 예보상 가능성이 높았는데 다행히 아침 예보에 비는 없습니다. 다만 종일 흐린 상태에서 해가 감질나게 나왔다 들어가는 날씨이고, 나가보니 실제 온도보다 춥게 느껴졌습니다.

 

아침에 원데이 교통카드를 사고, 트램을 탔습니다. 리스본의 트램은.. 정말 정서적입니다. 언덕을 오르내릴때는 샌프란시스코의 느낌과도 비슷하지만, 유럽의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을 헤집고 다닐때는 테마파크에 가깝습니다. 리스본 여행자들의 수호신 28 트램은 주요 관광지를 죄다 커버해서 유명한데, 페소아의 100년전 책에도 나오는것이 신기합니다. 어쩌면 도시로서 시간속에 박제된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덕에 수도의 산업적 기능에는 제약이 있었겠지만, 세월 견디고나니 세상 어디에도 없는 관광적 가치가 생긴점도 아이러니 합니다. 전통과 현대, 기능과 미학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안되는 도시입니다.

 


전망대에서 잠시 바다, 아니 구경을 했습니다. 리스본 항구에는 거대한 강이 흐릅니다. 지리를 모르고 가면 영락없는 바다인데, 실은 테주 (Rio Tejo)입니다. 영어로는 타구스(Tagu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강이란걸 아는 저도 보면서 말할 바다라고 말실수를 계속 정도로 대단한 강폭을 자랑합니다. 리스본은 어마어마한 테주 덕에 천혜의 바다 도시가 되었습니다. 대형 선박이 쉽사리 들어올 있지만 바다의 폭풍은 피할 있는 내륙의 항구. 바다의 확장적 접근성과 내륙의 통합적 기반이 뒤섞이는 도시.

 


그로 인해 고대부터 힘센 이들은 리스본을 장악하려 노력했습니다. 십자군 전쟁 안되는 성과를 이룬 곳도 리스본 수복인데요. 폭풍으로 길잃은 십자군이 포르투에 입항했습니다. 그리고는 포르투 대주교의 설득으로 리스본 공성 중인 왕을 만납니다. 왕은 함께 성을 치자고 했고 십자군은 양아치 기질을 발휘해서 거절합니다. 결국 리스본 왕이 3일간 약탈의 권한을 준후에야 만족해서 공성에 참가합니다. 리스본을 무슬림에게서 수복했지만, 십자군이 동료 가톨릭의 도시를 탈탈 털어버린 흑역사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물리적으로 강물이 벌떡 일어선 적이 한번 있었는데, 리스본 대지진이었습니다. 처음에 건물이 무너져 사람들이 깔리고, 한시간 정도 후에 쓰나미가 오면서 강물이 도시를 덮쳐 2 피해를 입혔다고 합니다. 부수고 씻어 내린후, 화재가 도시를 며칠간 불태웠습니다.

 

아무튼, 밀려드는 상념을 뒤로하고 목적지인 조르주 성으로 갑니다.

성은 윤곽이 매우 아름답고, 바이샤 지구 왠만한데서는 항상 보이기 때문에 관광객이라면 위에 뭐가 있는지 필요도 없이 본능적으로 가고 싶은 곳입니다. 최소한 저는 그랬습니다.

 


성은언덕 고도에 걸맞는 엄청난 풍경을 자랑합니다. 딸램은 불과 리스본 3일차인 조르주 성에서 인생 최고의 도시로 랭킹을 바로 바꿨을 정도지요. 이날 바람이 매워 원하는만큼 충분히 머무르진 못하고 성을 내려왔습니다.

 

성문에서 내려 걷다 비센트 동상을 봅니다. 비센트는 리스본의 수호 성인입니다. 비센트가 리스본으로 복귀할 배가 길을 잃었는데 까마귀 떼가 길을 열어주었고, 두마리 까마귀가 끝까지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리스본의 도시 문장도 배와 두마리 까마귀입니다. 비센트 수호성인은 알아보기가 쉽습니다. 수도사가 배나 까마귀랑 함께 있으면 비센트입니다.

 


이어서 구불구불한 골목에서 길을 찾으려 구글 맵에 나침반까지 켜고 방향을 찾습니다. 골목 골목이 자체로 볼거리지요. 노후해도 사연이 숨은듯해 아름답습니다. 특히 글을 못읽던 시절 집주인을 표시하던 관습으로 주인의 사진이 문패로 걸려있는건 매우 인상적입니다. 주인의 아름다웠던 시절이 상상이 갑니다. 현지말을 안다면 눈마주칠때 커피라도 한잔 청하고 싶은 정도.

 


시내가 넓지 않고 언덕이 가파른 편이라, 걷기에 익숙한 한국인 걸음으로는 '벌써 다왔어' 정도로 빠른 시간에 평지에 도착했습니다. 의도하고 간건 아닌데 알파마 지구로 내려오니 파두 박물관이 보입니다. 가기 전에 일단 주린 배를 채우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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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은 일곱개 언덕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불리웁니다.

 

실은 로마가 일곱 언덕위의 도시로 유명한데, 리스본도 그렇답니다. 로마와 비교하자면 리스본은 훨씬 밀집된 상태란 점이 차이입니다. 모퉁이를 돌면 바로 가파른 언덕이 나오고, 오르락 내리락이 여느 도시보다 심한 편입니다. 지도상 봤을때는 별로 멀지 않은 거리일지라도 언덕을 내려와서 다시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경우에는 생각보다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리스본의 주요 지구를 알아두는건 여행자로서 유용합니다. 일반 여행지는 의미상 구분이라면 리스본은 지리상 구별이기 때문입니다.

 

리스본의 기본이 되는 중심축은 바이샤(baixa)입니다. 호시우 역과 광장에서 꼬메르시우 광장까지 직선 도로와 이를 가로지르는 도로들로 이뤄진 지구입니다. 낮은 지대란 뜻인데, 언덕의 도시에선 귀한 평지라 예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드는 중심지역입니다. 서울로치면 종로 쯤이겠지요.

 

대항해시대, 타국의 유럽인들이 바이샤를 보며 경탄했던건 체스판 같은 도로, 반듯한 도로입니다. 요즘 같아서야 무슨 대수냐 싶지만, 중세 말기 유럽의 거점 국제도시 이런 레이아웃은 단연코 리스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탁월한 기능과 미학에 대가가 없었겠습니까. 천년수도에 미래지향적 도시계획이 가능했던 이유는 리스본 대지진 탓입니다. 저도 이번에 '운명의 ' 읽고서 소상히 알게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독실한 카톨릭, 아니 이를 넘어 미신처럼 맹신하던 리스본에 진도 9짜리 지진이 닥쳤습니다. 1755 11 1, 위대한 도시는 하루아침에 평지가 되었습니다. 왕마저 멘붕에 빠져 손만 부들거리고 사고능력 제로일 , 수습을 권한게 '외무'대신 카르발류입니다.

"전하 수습을 하셔야지요."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잠시 생각

"죽은자는 묻어주고, 산자는 먹여야지요."

간단한 답에 왕은 카르발류를 무한지지하고 리스본 재건의 총책과 재상으로 임명합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운빨 좋은 사내의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카르발류는 갈수록 국력을 잃어가는 포르투갈을 안타까워 하던 선각자입니다. 출신은 시골 무명 귀족인데, 아버지를 따라 리스본에 와서 살다가 일찌감치 과학과 이성을 숭상하는 대역죄인 스터디 그룹의 신지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우연으로 그가 개명한게 포르투갈엔 축복이 되었다는 점도 아이러니하지요. 그는 꾸준히 유럽 지식인과 교류하며 중상주의와 이성적 사고법을 수련하고 포르투갈 중흥의 기회만 노리던 차에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상황 고려하면, 죽은자는 묻고, 산자는 먹인다는 그의 답은 짧지만 생각은 깊은 겁니다. 죽은 자를 빨리 매장하지 않으면 전염병이 도는데 가톨릭의 의례를 존중하면 불가능 합니다. 산자를 먹이기 위해서는 치안가 식량 확보 및 다양한 행정적 통솔이 필요합니다. 카르발류는 그 짧은 시간에도 계엄에 준하는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하는 복잡한 조치를 시뮬레이션 했을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튼 졸지에 재상이된 카르발류는 전권을 가지고 일련의 특별법을 발동합니다. 가장 시급한 치안부터 잡습니다. 훔친자는 사형해서 잘 보이게 효수합니다. 치안이 잡히니 행정명령이 먹히기 시작하지요. 다음은 재건에 필요한 인력확보입니다. 하느님이 노했다고 기도만 하고, 리스본이 저주를 받았다고 도망가는 장정들에게 동원령을 내립니다. 재건의 인력을 확보한거죠. 다음 고정가격 강제매입과 징발 등으로 긴급식량을 확보하고, 특별세를 도입해 긴급 상황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합니다. 듣고 보면 고개 뜨덕여지는 이야기지만, 도시가 평탄화되고 왕에서 백성까지 모든 사람들이 모두 정신이 나갔을 때 하나하나 순서대로 수술하듯 진행한건 행정가와 전략가의 역량이 동시에 요구되는 일이라, 저는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리스본 재건 플랜. 런던 대화재 이후 탁월한 도시계획이 나왔지만 지주들과 이해관계로 실패하고 지금봐도 난개발의 런던이 사례를 통찰한 카르발류는 법과 여론조작, 요인 숙청  자기가 가진 권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끈기있게 리스본을 재건합니다. 마키아벨리즘으로 적도 많이 생기지만, 후세의 제가 봐도 카르발류 아니었으면 포르투갈은 동유럽과 다름없는 3 국가가 자명합니다. 동유럽 비하가 아니라 역사적 변곡점이 나라에 미치는 임팩트가 그러합니다.

 

아무튼 독재에 가깝게 리스본과 포르투갈의 정비안을 실행하여 리스본은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물론 지진의 지독한 상처로 포르투갈은 이후 2류국가로 머무르게 되었지만, 당시 상황 고려하면 그나마 많이 건진거라 봅니다. 침몰하던 포르투갈 호의 경종이 되어 수습을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호시우 광장에서 북쪽으로 가면 폼발 동상이 있습니다. 바로 카르발류가 후에 작위를 받은게 폼발에서 후작 Marques de Pombal입니다. 바이샤를 폼발이 만든 거리라해서 폼발리나스라고도 합니다.

 

리스본 주요지역 한군데 소개가 길었네요. 나머지 여행객에게 중요한건 지구입니다. 바이샤의 서편 언덕인 바이후 알투(bairro alto), 동편의 알파마(alfama) 알면 됩니다.

 

바이후 알투는 우리로 치면 강남 정도 될까요. 젊은이들이 모여 놀고 깔끔한 새건물이 비교적 많습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까몽이스 광장도 있습니다. 


반면 알파마는 삼청동이라 할까요. 리스본 재건계획이 닿지 않은 곳이라 예전 그대로 모습이 남아 있고, 오히려 관광객의 눈을 끕니다. 굽이굽이 미로같은 골목은 현지인도 잠깐 한눈 팔면 길을 잃는다는 곳이지요


드디어 리스본의 첫 여정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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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여정은 호까 (Cabo da Roca)입니다.


여긴 제가 무척 가보고 싶던 곳입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품은 이스탄불도 봤지만, 징기스칸이 그토록 닿고자 했던 서쪽의 땅끝은 왠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바로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이란 하나로 유명한 호까 곶입니다.

 

원래 유럽에서 유명한 포인트는 땅끝이라는 이름 그대로 피니스테레(Finisterre)입니다. 포르투갈 북쪽 스페인 땅인 갈리시아에 있지요. 유명한 까미노길의 종점 산띠아고 꼼뽀스뗄라 성당에서 서쪽으로 걸으면 나옵니다. 중세와 현대의 순례자들이 들르기도 했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시차를 두고 주인공들의 상황 전환이 이뤄지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발견의 시대 전에는 피니스테레가 세상의 한계점이었지요. 거기서 바다로 나가 끝까지 가면 물밖으로 떨어지거나 괴물들이 나와 항해자를 죽게 만든다는 신화적 안전한계선.

 

하지만, 지리학이 발전되면서 포르투갈의 리스본 근처에 진짜 서쪽이 있다는게 알려지고는 지리상 땅끝은 이젠 확실히 호까곶입니다. 까몽이스를 빌리면,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도다'라는 감성.

 

헤갈레이라 별장에서 호까 곶을 가려면, 신트라 패스로 버스를 타고 다시 신트라역에 가서 호까 가는 버스를 갈아 타야합니다. 시간이 세시가 넘어 버스를 두번 기다려 갈아타면 호까 곶에 가도 해가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무어인의 , 페나 , 헤갈레이라 별장까지 모두 산을 헤집고 다닌 일정이라 첫날부터 체력도 상당히 소비한 터라, 우버를 불렀습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포르투갈의 우버는 환상입니다. 가격도 착하고 차도 깨끗하고 기사님은 훌륭하고 모든게 좋았습니다. 중턱의 헤갈레이라에서 호까 곶까지 16km 되는 길을, 심지어 행정구역도 바뀌는 거리를, 14유로 정도에 가니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호까 가며 이야기 나눈 기사님은 조지 클루니 같이 멋진 수염을 기른 분인데, 브라질에서 오래 살다가 왔다고 합니다. 기사님의 처가인 아마존 동네 그리고 슈하스까리아나 까이삐리냐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다 보니 순식간에 땅끝에 도착했지요. 재미난건 리스본에 돌아와 산지도 십수년인데, 양반 호까 곶을 오늘 처음 가본다고 합니다.

" 됐네요. 우리 내려주고 구경 하다 가요."

말없이 웃기만 하던 기사님은 진짜 그럴 작정으로 콜을 잡았는지, 주차를 하고 담배 한대 멋지게 피워 물고 해변으로 갔습니다.

 


드디어 마주한 대서양. 기분 탓인지 감흥이 다릅니다. 베니스의 아드리아해, 아테네에서 보던 에게해, 바르셀로나의 지중해와는 원래 규모가 다르지만, 하와이에서 사방이 물이었던 태평양도, 끝없이 햇살이 부서지던 캘리포니아의 태평양, cape cod DC, 마이애미에서 보던 해오르는 대서양과 느낌이 다릅니다.

 


땅끝이란 상징성에 대항해시대의 영광이 스러진 파두(fado) 같은 문화에 남아 서려 있는 , 몸이 날아갈듯 강한 바람 등이 묘하게 종말적 느낌마저 듭니다. 춥지만 않다면 점심 먹고 앉아서 해질때까지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 였습니다. 평생 노동하신 할아버지의 굳은살 배겼으되 닿으면 온기가 전해지는 손을 잡은 기분이었습니다.

 

의미를 접어두면 호까 자체는 섬과 해안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풍경입니다. 등대가 있고 깔끔하게 정돈된 투어 라인이 있는 그런 장소. 여행 내내 놀랄 정도로 한국인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특히 호까 곶은 방금 관광버스로 한국 손님들을 쏟아 놔서, 제주 섭지코지에 있는 느낌과 같습니다. 그정도의 외국인과 정도의 한인들.

 


뒤집어 말하면 아직 중국인 단체 여행객에 오염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유럽 주요 관광지 아닐까 싶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호까 곶에서 일몰을 보려던게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에도 한기를 느낀다는 곶의 바람이 너무 맵습니다. 우버를 타서 절약한 시간이 한시간 정도 되니, 원래 계획엔 있었으되 빠듯해서 포기했던 카스카이스에 가기로 했습니다.

 


여기는 대서양을 남면하고 있는 해안 마을입니다. 풍경이 아름다워 부자들의 별장 마을이라고도 하지요. 잠깐 봐서는 그런 사회경제적 의미는 모르겠고, 그냥 아름다워요. 상점이 늘어선 골목에 들어서면 심장까지 들어오는 깔사다(Calçada) 매혹.

 

포르투갈의 거리 미술 세가지라고 하면 세가지를 꼽습니다. 구석구석 꼼꼼히도 벽들을 점령한 그래피티, 색과 형태가 일품인 도자기 타일 아줄레주(azulejo) 그리고 공공 시설 만들라하니 예술을 해버린 깔사다.

 

저희 가족이 깔사다를 처음 본건 마카오였습니다. 광장에서 성당까지 물결치는 파도같은 무늬의 신선한 생경함이란. 기분이 좋은걸 넘어 유럽에 듯한 기분을 흠뻑 느꼈지요. 식당에서 세트로 끼워준 맛좋은 포르투갈 와인과 깔사다 깔린 광장이 포르투갈 여행을 은밀히 추진해온 의식속의 음모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호텔 주변에서도 깔사다를 봤겠지만 급히 이동 중이라 기억 없었는데, 여행객의 완보로 즈려 걷는다면 이야기는 완전 다릅니다. 단지 이름 모를 골목을, 광장을 걷는데 멋진 행사의 주인공이라도 기분입니다. 조금 수다 떨며 기다리면 뭔가 근사한 일이라도 벌어질 정황입니다. 공간이 지어내는 정서는 디자인의 공공재적 역할을 넘어 인본적 존재의미까지 되새기게 합니다.

 

깔사다는 실제로 돈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장인들이 전체 그림을 생각해서 그에 맞춰 색돌을 픽셀처럼 박아 넣고 모래를 뿌려 틈새를 메운 , 나머지는 행인의 몫으로 둡니다. 그래서 유명한 광장은 사람들의 발굽에 닳고 닳아 매끈해집니다. 돌과 돌의 점묘가 아니라 거대한 얼음판처럼 면발광을 합니다. 모습은 저희같은 포르투갈 초짜는 매번 놀라는데, 흡사 방금 비온 느낌입니다. 점포에 있다 나오면 바닥에 사물이 비춰 비가 왔었나 흠칫하면 마른 . 무척 아름답고 기분 좋고 걷는게 행복한 포르투갈의 깔사다입니다. 마카오 가보신분들은 느낌 아실듯.

 


해변과 바닷가 마을의 골목, 광장을 정신없이 걷다가 리스본으로 열차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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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세트가 아니라고?

페나성(Palacio de Pana)은 여행 사진으로 볼때부터 아기자기한 미감으로 기대가 컸습니다. 허나 실제로 가보니, 초현실적이었습니다.

 


무어인의 성에서 버스로 정거장, 걸어도 15분거리지만 오르막입니다. 체력을 아껴야 하는 여행객은 신트라 패스로 버스를 타고, 여정이 넉넉하면 산길을 걸어도 좋습니다. 좁은 산길에 거의 꽉차는 버스는 구불구불 길을 잘도 가는데, 마지막 모퉁이를 돌면 눈앞에 튀어나오는 노란 성은 소리가 나옵니다.

 

페나성은 유명한 관광지라 무어성보다 줄이 몇배 깁니다. 하지만, 딸램의 사전조사로 무어성에서 통합 입장권을 샀기 때문에 우리는 안서고 바로 입장했습니다. 피같은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최소 반시간 이상 아꼈고, 괜히 기분으로 흡족히 입장했습니다. 페나성은 정문에서 자그마한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데, 다리가 불편하면 3유로 정도하는 카트를 타도 됩니다. 우리는 내면 마음이 불편하니 신나게 걸어 갔습니다. 사실 포르투갈 정도 언덕은 한국사람에겐 귀엽습니다. 연일 다니는게 힘든거지.

 

신트라 마을에는 리스본 왕가가 더위를 피하던 여름궁전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트라 여행의 주요 목적이라 정도로 페나성이 유명하지요. 기암절벽위에 강렬한 원색의 성은 동화책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성은 페르디난트 왕이 부인에게 선물했다고 전해지는데, 부자의 왕놀이보다는 자체의 생김새가 눈을 잡고 놔주지 않습니다.

 


건물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슬람 양식과 고딕, 심지어 포르투갈 고유의 마누엘 양식까지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오랜 오욕의 세월을 견뎠다는 이야기고, 한발 물러서 보면 사실 건물이 욕볼일이 뭘까 싶기도 합니다. 거주하는 사람이 서로 이기고 바뀌었을 뿐이지.

 

아무튼 인생사진 건진다는 페나성에서 아이폰X 초상화 모드로 사진을 잔뜩 찍고 다음 장소로 향합니다.

 

 


멋진 점심을 먹고 싶었지만, 레스토랑 가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카페(Tasca보다 캐주얼해서 음료와 가벼운 빵을 파는 식당의 통칭)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산위에서 바람을 많이 맞아 뜨끈한 빠니니가 매우 반갑습니다.

 


다음은 헤갈레이라 별장(Quinta da Regaleira). 장소를 점지한 딸램은 어떤 곳인지 알고 갔지만 저는 아무 생각없이 따라갔다가 가장 즐거웠던 곳입니다. 왕궁도 아니고 백만장자의 별장이 대수라고.. 생각했던 저는 짧았던 소견을 뉘우쳐야 했습니다.

 

정원의 여러가지 탑과 인공호수, 건물들도 아름답지만 이런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수도 없이 봤으니 넘어가고.. 별장에는 매우 특별한 장소가 있습니다. 3차원적이고 매립형이라 사진으로는 제대로 보여주기도 힘들어요.

 

일단 설명하면 언덕의 위에 작은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돌무더기 사이에 돌판으로 문이 있는데 문을 열면 동굴입구가 나옵니다. 그리로 바로 들어가도 되고 돌무더기에서 약간 내려오면 작고 평평한 운동장이 있는데 여기에도 비밀의 돌문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보듯, 돌판인데 밀면 회전하면서 한명이 빠져나가도 다시 닫히는.

 


입구로 들어서면 밑으로 깊이 파인 원형 계단이 있습니다. 결국, 언덕속에 묻혀있는 탑인겁니다


탑을 따라 내려가다가 길이 아닌듯 어둠속으로 분기해서 수도 있습니다. 깜깜한 동굴을 믿음 하나로 걸어 밖으로 나가면 전체 언덕의 중턱으로 빠져 나옵니다. 광장과 분수도 있고요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고 중간이므로 다시 원형계단을 따라 탑의 끝까지  내려갑니다. 탑의 바닥에서는 손바닥만한 하늘이 멀리 보입니다


다시 원형 바닥에 어두컴컴 뚫린 구멍으로 몸을 낮추고 걸으면 미로 동굴이 나옵니다. 미로 동굴의 끝에는 폭포가 보입니다


폭포 넘어에 언덕 아랫자락인거죠. 언덕 속에 거대한 탑과 미로 동굴이 폭포와 숨은 돌문 속에 숨어 있는 구조입니다.

 

철학적으로는 탑의 최상층에서 아래로 가서 폭포로 나오는 과정이 죽음 이후의 환생 과정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매순간이 매우 기이하지만 가슴 설레이는 경험입니다. 어른을 위한 놀이터라고나 할까요. 헤갈레이라 별장은 브라질과의 커피무역으로 돈을 많이 아들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돈만 있다고 이런걸 쉽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주인장의 세계관이 대단하단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페나성과 헤갈레이라 별장, 정말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펼쳐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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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nibest 2018.02.02 08:57

    열혈독자가 다음 포스팅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요.
    페나성 딱 내 스똬일~

  2. BlogIcon Inuit 2018.02.03 10:51 신고

    응 페나성 가서 너가 이거 보면 꽤 좋아하겠다 생각했었네. 근데 사실 헤갈리이라 가면 더 좋아할걸. 완전 인디아나 존스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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